알라딘서재

고독한 미미씨의 서재
  •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 19,800원 (10%1,100)
  • 2021-05-04
  • : 35,172

어느 날 우주에서 눈을 뜬 남자는 기억을 상실한 채 자신의 존재 의의를 묻는다. 내 이름은 무엇이고 나는 왜 우주에서 표류하고 있는가.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평범한 선의를 가진 뛰어난 생명학자가 멸망을 앞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외행성계로 날아가 특별한 생명체와 교류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있을 곳을 찾는 이야기다.


근 미래를 다룬 SF 소설에서 685p 동안 이야기의 당위성을 지켜내며 독자의 몰입도를 유지하는게 가능할까? 굉장히 기초적이지만 어려운 질문인데 그 소설의 작가가 '앤디 위어'라면 좀 믿음직 하다. 한국에서만 5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마션>의 원작 작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말이다. 전작에서 화성에 조난당한 우주인을 전 세계를 동원하여 구해낸 작가는 이번엔 지킬 대상을 '지구'로 상정하고 인간을 태양계를 벗어난 은하계로 보낸다. 그리고 끝내 지구를 지켜낸 그는 지구 귀환보다 외계에서 만난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며 스스로 자신이 존재할 장소를 선택한다.



개인적으론 책을 읽을수록 작가의 캐릭터 빌드업과 충실한 이야기 전개에 놀랐다. 독자가 지루하지 않도록 액자식 구조를 취하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당위성인 지구의 멸망 위기에 대한 설명을 초반에 밝히고 오히려 주인공이 우주로 나온 이유를 숨긴다. 이야기 초반부터 주인공 그레이스는 꾸준히 더 적합한 인물이 있었을텐데 자신이 인류를 대표하여 우주에 나온 것을 의심한다. 아마 그 의심 중에는 본인이 인류를 위해 편도의 우주선을 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주인공은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스트라트에 의해서 강제로 우주선에 태워졌고 이 사실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날 죽이겠다고? 좋아! 난 당신 임무를 죽여버리겠어! 내가 우주선을 망가뜨릴 거야!"

스트라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은 그러지 않을 겁니다. 말했다시피 당신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당신은 엄청 화가 나겠죠. 하지만 결국 당신들 셋은 우주로 나갈 것이고 당신은 당신 일을 하게 될 거예요. 이건 인류가 달린 문제니까. 나는 당신이 옳은 일을 할 거라고 99퍼센트 확신합니다." _p.567~568



...실제로도 그레이스가 이 사실을 기억해 냈을 때는 이미 새로운 외계의 친구 로키와 태양의 열기를 좀 먹는 아스트로파지의 천적 타우메바를 발견한 뒤였고 그는 이 사실에 슬퍼하면서도 지구에 자신보다 타우메바를 먼저 보낸다.



"상처 입은 자아요? 이건 제 자아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우리 아이들 문제라고요!"

"아이 없으시잖아요."

"아니, 있어요! 수십 명이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매일 제 수업을 들으러 와요.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그 아이들 모두가 매드맥스식의 악몽 같은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 제 관심사는 아이들이에요. 그러니까 그 못된 아스트로파지 녀석들 좀 주시겠어요!"_ p.106~107

(아마도 여기서 스트라트는 그가 인류를 책임질 수 있는 과학자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제 무덤 을 파고 만 그레이스...)


또한 그가 촉망받는 생명학자 였다가 학계에 환멸을 느끼고 중학교 과학교사가 된다는 설정도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1. 학계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정치력이 강하지는 못하지만 이직한 곳에서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점.

2. 중학교 과학교사가 되기 위해 전공인 생명학 외에도 지구과학, 물리학 법칙 같은 기초과학을 폭 넓게 알고 있다는 점.


1번은 앞선 스트라트의 예언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이야기의 완결에서 그가 지구로 귀환하지 않고도 자신의 자리를 찾는데도 이용된다. 마션의 주인공 마크가 혼자서 화성에서 고군분투 하다 무사히 지구에 안착한 것과 달리 그레이스는 외계에서 만나 함께 타우메바를 연구한 친구 로키를 구하고 지구 귀환을 포기한다. 그리고 친구의 행성에서 타우메바족 아이들을 가르치며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생활을 그린다.


2번은 작가가 물리학에서 어긋나지 않은 SF 소설을 완성하는데 영향을 끼치는데 이야기의 화자는 주인공이기에 그가 자연스럽게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우주의 중력과 에너지 계산을 설명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외계 종족인 로키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도 그레이스의 과학적 지식에 의거하고 있다.


덤으로 주인공의 긍정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분명 한 사람의 뛰어난 과학자가 지구를 구한 플롯임에도 책을 읽은 전세계의 독자가 함께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모든 계획은 완벽하지 않고 계산은 엇나가고 실수하기도 하지만 그레이스는 지구를 구하고 자신이 있을 장소를 스스로 찾아낸다. 지구 멸망을 막는 SF야 은하계의 행성보다 많겠지만 앤디 위어가 고수하는 낙관적인 분위기는 독보적이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주인공과 악역 아닌 악역의 구성도 놀라웠고 독자들의 상상력이 빈공간을 만드는 시점엔 '매드맥스'나 '스타트렉', 고전 우주영화를 이용하여 메꾸는 스킬도 매우 놀라웠다. SF를 좋아하지만 디스토피아가 조금은 버거울 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귀여운 외계 친구 로키도 만날 수 있다! 지구에는 없는 참 우정의 맛.)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