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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미씨의 서재
  • 갈라테아 2.2
  • 리처드 파워스
  • 14,400원 (10%800)
  • 2020-10-30
  • : 398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로 20세기의 SF를 먼저 읽고 꽤 시간이 흘러 거의 2세기를 앞선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이야기의 서정성이었다. 바짝 메마르고 팍팍한 20세기 SF와 달리 주인공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의 관계가 어찌나 애증이 넘치고 추격전이 로맨틱하던지. 나는 이 차이가 과학 발전사를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20세기 말에 쓰여진 #갈라테아 2.2를 읽고 나서 깨달았다. 이야기의 절절함은 과학의 발전이 아닌 피조물에 대한 관계성에서 온다는 것을.

주인공 릭은 작가 #리처드파워스,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작가는 물리학도로 대학에 입학해 이듬해 문학을 위해 영문과로 전과하여 석사까지 마치고 졸업 후에는 프로그래머로 근무했다. 릭 역시 물리학도로 대학에 입학하여 문학과로 전과한 후 소설가로서 일을 시작한 인물이다. 영문학도 시절 만난 연인과 외국에서 생활하다 헤어진 뒤 귀국하여 대학에서 1년동안 AI 시스템 '헬렌'을 프로그래밍 하게 된다.

릭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문학가이다. 헤어진 연인과 문학으로 대화를 나눴고 헬렌의 학습도 성장시기에 맞춘 문학작품을 베이스로 진행된다.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그의 몫인데 헬렌이 생각 이상의 성취를 나타낼 때 그는 육아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헤어진 연인과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지만 헬렌으로 그의 욕망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난 내가 앞으로 절대 은유를 쓰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 말 그대로 하나의 모래알 안에 담긴 우주가 있기 때문이었다. 실리콘 기계에 시뮬레이션되고 만들어진 노래.

p.323

프랑켄슈타인과 창조물은 동성값을 연상시켜 분신이지만 경쟁관계가 형성되고 여기에서 오는 긴장감이 있다면 갈라테아는 피조물이 물리적 육체가 없는 AI임에도 이성으로 설정되는 순간 피그말리온이 되는 것이 재밌었다. 같이 동고동락한 렌츠는 헬렌에게 시종일관 냉정한 반면, 주인공 릭은 소설가적 사고에 절여져 잊은 인간성을 헬렌을 프로그래밍하며 되찾는 듯 하다. 육아로 시작하여 죽은 연인을 대신하는 자리까지 발전하는 것이 특히.

이외에 1995년도의 미국 대학가에서 자꾸 불려오는 페미니즘, 다양성에 대한 시선도 재밌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테스트를 헬렌에 맞게 즉석에서 변형했다.

"잰은 서른두 살이다. 그녀는 교육을 잘 받았고 두 개의 학위가 있다. 그녀는 미혼이고 강인하며, 자기주장이 강하다. 대학에서 그녀는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했다. 다음 중에서 가장 적절한 문장은 무엇인가? 첫 번째, 잰은 도서관 사서다. 두 번째, 잰은 사서이며 페미니스트다."

p.360

"난 무슨 인종을 싫어하죠? 누가 날 싫어하죠?"

무슨 문장을 그녀에게 인용해 줘야 할지 몰랐다. 신체가 없기 때문에 그녀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거라고 말해 줄 방법을 몰랐다.

p.374

세계관 파악과 릭의 젊은 시절과 현재 시점이 번갈아 진행되서 100p까지는 적응이 필요했는데 그 뒤로부터는 재밌게 읽었다. 2020년대에 나오는 SF에는 프로그래밍 된 AI의 활약이 나오지 AI를 교육시키기 위해 어떤 알고리즘과 문학작품을 읽히고 반응을 보이는지 이렇게 자세히 보여주는 책이 없었서. 작가가 마음 먹고 쓴 문학적인 문장들과 고전작품들에 대한 견해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다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요즘에는 순문학 작품에서도 보기 힘든 은유들도 담뿍 담겨있어 플래그도 잔뜩 붙이며 봤다. 고전문학과 2020년 SF 사이를 이어줄 좋은 작품이라는 결론.

#도서제공 받은 #갈라테아2.2 #SF문학 과 세계#문학 사이

#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SF애호가,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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