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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미씨의 서재
  • 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 김초엽 외
  • 11,700원 (10%650)
  • 2020-09-21
  • : 1,909


그 동안 등장했던 재난 영화들이 모두 허구라는 듯이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됐다. 비현실이 현실이 된 세상에서 SF 작가들은 독자드에게 어떤 이야기로 경이감을 줄 것인가?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던 9월, 뜻밖에도 문학과 지성사에서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6명을 모아 책을 발표했다. 이 SF 앤솔러지의 제목은 이 시대 그 자체를 담은 '팬데믹'이다.






존재와 존재가 나누는 따뜻함으로 보여주는 경이감

김초엽 '최후의 라이오니'



광속을 넘나드는 시대에 나누는 따뜻함은 어떤 모습일까? 김초엽이 그리는 SF의 경이감은 존재와 존재가 나누는 따뜻함에서 온다. 자가복제를 통해 영생을 살 수 있다고 믿던 사회가 감염병으로 멸망하는 동안 시스템 유지를 위해 제작한 인공지능 로봇들은 그 곳에 남겨진다. '라이오니'는 이 곳에 최후에 남아있던 인간으로 다시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감염병을 피해 탈출한다.


몇 백년 후, 멸망한 거주구의 회수 작업을 진행하는 종족이지만 멸망을 맞이한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결함을 가진 주인공이 이 곳에 찾아온다. 시스템을 통제하는 로봇 '셀'은 죽음을 앞두고 그녀를 계속 라이오니라고 부르며 행성에 붙잡아 놓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곳에 머무르며 자신의 결함이 사실은 결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김초엽의 세계에서 장애나 결함은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뜻함을 나누는 종족의 경계도 없다. 그저 존재했기에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며 몇 백년이 지나도 그 사랑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세상을 따라가는 독자는 순간 바운더리 없이 넓어지는 세계에 해방감과 경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서사의 전개에 과학이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SF적이면서 서사의 방향은 말도 못하게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팬데믹을 주제로 한 책의 처음 이야기가 "처음과 끝"이며 김초엽이라니 너무나 완벽하다.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정소연 '미정의 상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나는 그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 간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미정의 상자'는 팬데믹이 장기화되어 유령도시가 된 근미래 사회에서 2020년 8월 25일을 기점으로 2019년 3월 5일까지 되돌아가는 타임라인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도입부에 2030세대의 영원한 숙제가 될 주거문제로 시작하여 현실감을 높이며 시간을 되돌아갈 때마다 초기, 정부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기업의 대처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이미 희생된 연인과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주인공 미정은 결국 그 상자를 덮는 것으로 사랑의 방법을 결정한다.


SF를 비롯한 장르 문학은 현실의 문제점을 긴밀히 파고들고 장르적 상상력과 장치를 이용하여 이를 실험한 뒤, 이야기를 끝맺으며 자신의 해답을 내놓는다. 정소연 작가는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과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설계하였다. 팬데믹 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의식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를 말이다. 


굉장히 사회적인 이야기는 희생된 연인의 이야기가 더해져 그들이 사랑스러운만큼 가슴이 아팠다. 미정과 유경이 처한 현실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언어가 미래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시도

배명훈,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처음에는 맞춤법에 실수가 있는 줄 알았다. 인더넷, 귿난다, 한 학기 고스, 동과, 혜댁 등. 팬데믹이 100년 후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인 언어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니!


ㅎㄱ은 언어다 위대한 참. 내내 이런 표현들이 한 페이지 나와도 내내 파악할수 있다 문맥을

한글은 참 위대한 언어다. 한 페이지 내내 이런 표현들이 나와도 문맥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분들이라면 같은 문장이 두 번 반복된 것을 알 수 있듯이ㅎㅎ


언어 형식의 충격 때문에 묻힌 것 같지만 주인공이 역사학과 대학원생이며 졸업 논문을 위해 '격리'실습에 들어간다는 설정도 무척 재밌었다. 무언가를 '개달은' 주인공이 가다르시스는 카타르시스로 발화해야 언어의 참맛이라는 걸 느끼는 장면도!


마지막 '작가 노드'마저 세계관을 관철한 작가정신에 정말 좋은 자극을 받았다. 이 작품은 두고 두고 낭독하며 음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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