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지 말아요
미미씨 2020/01/1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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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단경로
- 강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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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 2019-12-19
: 464
(스포주의) 리뷰의 처음에는 텍스트에 대한 줄거리를 제시해야 한다. 단편적으로 말하면 강희영 작가의 최단경로 는 계획하지 않은 아이를 만든 부모가 사고로 아이를 잃고 각자의 방법으로 아이를 추모하며 죽음으로서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팩트에 가까운 이야기의 큰 줄기이지만 팩트는 아니다. 소설에서 그들의 끝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기 때문이다.
애영과 진혁에게 아이가 생긴 것은 그들의 우발적인 성욕때문이 아니다. 이유를 찾자면 방탕한 남편에게 실망한 애영의 어머니가 복수를 꿈꾸며 안방의 콘돔에 구멍을 뚫어서이다.
그럼 이 사건의 가해자가 애영의 모친인가? 그녀는 두 사람의 딸을 태어나게 했지만 결국엔 손녀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목숨을 잃는다.
진혁은 학생 때 생긴 자신의 아이와 애영을 곧바로 따라 나서지는 못했지만 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아이가 죽었을 때엔 공중파 라디오에 비밀스럽게 아이의 옹알이 소리를 섞어내어 추모한다. 그리고 아마 바다에서 자살한다.
애영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대신 제도로 보장되는 안락사를 선택한다. 약 1년 후의 안락사를 앞두고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이는 역설적으로 애영이다. 문화지원을 받아 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예술가들을 만나고 대학원을 등록하고 한국에서 온 혜서도 만난다. 그 모든 것은 다시 아이와 엄마를 만나기 전에 그들이 목숨을 잃은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다.
여기에 마리에와 혜서의 서사, 그리고 다미안이 강의하는 최단경로를 찾는 프로그래밍 이야기가 섞여 소설은 완성된다.
이야기는 비극적이지만 누구 한 사람에게 그 비극의 원인을 돌리지 않는다. 사고를 낸 가해자조차 시스템의 피해자로 만들만큼. 그럴수록 가슴이 아프다. 실제로 애영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락사를 선택한다. 원망을 할 삶의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애영이 안락사 심사기간 동안 만난 마이레는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혜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애영의 옆에 남기로 한 그녀의 "어디 가지 말아요"라는 말은 애영을 묶어두었을까.
사실 그 점이 궁금하지 않다ㅋㅋ 나는 안락사 제도를 지지하고 애영이 편안하게 쉬었으면 하기 때문에. 하지만 살아남을 힘이 있다면 그녀의 다른 선택도 응원할 수 있다.
켜켜이 쌓인 등장인물들의 서사와 누구나 겪을 수도 있는 가족의 사고를 소재로 이렇게 뭉근한 아픔을 겪는건 참 오랜만이다. 어떻게 보면 카뮈 이방인과는 정반대적인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근래에 등장하는 남자인물을 안타깝게 느끼는 경우가 잘 없는데 진혁이 양육을 포기하는 순간마저 그가 안타까웠다. 문학의 순기능.
단점이라면 남자작가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진짜 남자작가라는 게 알겠던 그 지점. 여성작가는 생리주기를 굳이 이렇게 장치로 쓰지 않는다. 심지어 과도했다고 본다.
현재 AI가 만드는 최단경로는 충분히 이 책과 같은 사고를 낼 수 있다. 나는 최단경로보다 애영이 과제로 제출한 그런 경로를 채택하는 사회에 살고 싶다.
그리고 애영이 살아갈 시간이 얼마이건 그 동안 평안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진혁의 유품같이 남겨진 곰인형이 필요한 아이의 집에 간게 맞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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