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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냥의 서재
  • [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1 : 역사의 트라...
  • 한강
  • 41,220원 (10%2,290)
  • 2014-05-19
  • : 67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라딘 외 독서 커뮤니티에 올렸던 후기를 재게시합니다. 운영방침상 평어(예의있는 반말)로 적혔습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를 결국 완독하는데 한 2년이 걸렸어. 반쯤 읽은 상태로 2023년 말 작가님 북토크를 들으러 갔고, 그 때 들은 이야기에 힘입어 2024년 4월에는 끝까지 읽어냈어.

힘들게 읽은 책이니까 후기를 올려야지,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사적인 문장이 튀어나오는 거야. 줄거리도 해석도 평가도 제친, 아무도 묻지 않은 내 이야기. 마치 인선의 세번째 영화 같은, 흰 벽에 그림자가 일렁이는, 포장 없는 혼잣말.

정말 좋은 소설이라고, 읽어보기를 권하는 글을 쓰고는 싶은데 내가 쓴 솔직한 후기를 다 올리면 그건 내 이야기가 되어버리니까 (그리고 너무 길어서) 한 토막만 잘라왔어.


*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아프고 괴로운 역사가 매섭게 몰아친다. 그건 흔히 '그런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로 정렬되는 정보값이다. 그리고 사실 이미 아는 이야기다. 역사교과서의 몇 줄, 어딘가의 다큐멘터리 스틸컷, 제주도에서 경산에서 몇백이 몇만이 죽었다는 도표로.

우리 역사라서, 알아야 하니까, 가르치니까 배우는 이야기를, '필요 이상으로' 아프고 괴롭게 받아들이기 위해, 경하와 함께 어두운 밤 길고 긴 눈길을 따라 걸었다. 책의 초반은 외롭고 초조한데 느리다. 몰입을 위한 시간이다.

몰입을 향해 걸어가는 지루함을 상쇄하는 장치는 눈이다. 눈이 계속 내리고, 몸은 자꾸 차가워진다. 눈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는데 눈은 아름답고, 시체의 얼굴을 덮는 눈도 있고 산 자의 살갗에서 물로 녹아내리는 눈도 있다. 경하는 자꾸 눈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는 자꾸 차가워진다.

글의 초반은 인선의 마지막 영화를 닮았다. 화면에 반쯤만 나왔다 사라지는 화자의 질문 없는 대답들. 슬프지만 시도 애도도 아닌 것들. 한 개인의 외로운 독백에 공감했다면, 어느 참혹한 역사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다. 개인의 삶으로 보기에는 너무 끔찍한 삶일지라도, 어쨌든 모든 학살과 고문은 개인에게 벌어졌으니까.

사랑해서 아파하는 마음에는 적당히가 없어서, 전달하기 위해서 편집하는 순간 그건 진짜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은 일대일로, 너에게서 나로 전해진다. 촛불 하나가 꺼질 때까지만 이어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작별하지 않아서 계속 아파하는 이야기.

*


지난달 책을 완독하고는 작년 12월 작별하지 않는다 북토크 후기를 오랜만에 꺼내 봤는데, 질답 시간에 '최애'에 대해 답변하신 말이 새삼 와닿더라. 소설은 참 좋은 건데 (감정의) 밀도가 높아서 아플 때는 읽을 수가 없었다고. 아픈 게 나았을 때야 다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소설은 참 좋은 거라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정말로 좋은 소설이야. 서두를 필요 없이 각자의 속도로, 읽을 수 있을 때 읽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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