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이었나, 유리컵을 깨뜨렸다.
날이 추워서 급히 창문을 닫으려고 탁자에 내려놨던 유리컵을 깜빡하고 휙 몸을 돌리다 그렇게 됐다.
(공익을 위한 제보: 다이소 2000원 내열유리컵은 강화유리컵이 아닙니다. 깨지면 산산조각납니다.)
순서대로 떠오른 건 1.고양이!! 막아!!! 2.뭐야 완전 먼지가 됐네 3.이거 얼마 전에 읽었는데.
여기에서 3이 이 시집이었다.
달걀을 깨서 유리잔에 넣을 때였다. 달걀을 가득 담아
테이블에 유리잔을 내려치면 그 잔이 자신만의 달걀을
낳을 것 같아서. 하지만 내려치니 깨지는 건 내 앞의
창문이었고...
-<새의 밤>
(내 유리잔에 담긴 건 달걀이 아니라 아쌈과 설탕을 듬뿍 넣어 팬에 끓인 로얄밀크티였다.)
이번에 알았는데, 유리가 깨질 때는 아주 맑은 소리가 난다. 얇은 유리라서 그랬는지도.
덕분에 나는 이제 이 시를 읽을 때면 머릿속으로 챙그랑/찰랑/챠르릉 효과음을 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유리를 깨뜨리기 전에도 나는 이 소리를 상상할 수 있었다.
달걀을 담고, 잔을 집어들고, 강하게 내려치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챙그랑. 그런 소리가 나겠지.
그럼 조금 시원하려나.
(하고 생각했었다. 현실에서 조각난 유리잔이란 유리먼지를 전부 제거했다는 확신을 위한 고달픈 사투다.)
강지이 시인의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는 표지의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시집이다.
시의 깊이와 무관하게 시어는 난해하지 않으며 쉬이 손끝에 닿는다.
단어를 읽으며 느끼고, 휘두르고, 보고, 맡고, 상상한다.
나는 깨어지는 유리잔, 알록달록한 물고기들, 너무 밝은 바다, 종이를 태운 불의 냄새를 안다. 그건 초대장이다.
감각의 공유가 가능하다면, 공감도 이해도 곧 따라온다.
시인의 공간은 출입에 관대하고, 방대하다.
여름에서 시작해 겨울까지 함께 걷고, 더 넒은 곳까지 가자고 문을 연다.
그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시인을 만난다면 어쩜 이렇게 예쁘니, 하고 팔짱을 끼고 싶다. 물론 허락을 받고!)
오늘도 눈이 내리길래 발자국을 잔뜩 남기고 들어왔다.
유리 같은 이 눈 속에
발이 들어맞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고-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