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시’라는 장르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시집을 꾸준히 읽어오면서 나름 시 읽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시인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독자의 존재를 잊은 듯 시인 자기만의 감성에 심취해 쓰인 시를 만날 때면 여전히 혼란스럽고 속상한 마음이 저를 덮칩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시인이 쓴 시가 한곳에 모인 앤솔러지가 꽤 도움이 되더군요. 저의 감성과 맞는 시인과 맞지 않는 시인을 한 권에서 분별하고, 이후 그 시인의 책을 따로 찾아 읽을 수 있으니깐요.
그런 의미에서 『2026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역시 좋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현대문학상’의 후보작인 만큼, 작품이 담고 있는 문학적 성취는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라 믿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좋고 나쁨을 판별했던 기준은 어디까지나 ‘취향’이었습니다.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시도 분명 있었지만, 수상자 김상혁 시인의 작품을 비롯해 제 마음에 와닿는 시를 적지 않게 만났습니다. 그런 시를 읽을 때면, 저는 역시나 행복해지더군요.
11강 ‘모더니즘과 모더니티’ 교안 준비 중
교무팀 연락이네요. 봄학기로 강사
임용이 만료되며 재계약은 어렵다고요.
획 떠나지 말고 김 선생이 고르고 키운
학생들 보게 게시글 하나 남기라는 학과장님
권고사항입니다. 가르치는 나도 시가 잘
안 돼요. 열정이 떨어진 느낌? 데뷔하고 나서는
쓰고 송고하고 한참 뒤 파일 열면 거기에 들인
시간부터 떠올랐지요. 요즘은 나보다 늙은
선배가 아직 시간강사라는 사실 그러므로 내게
찬스가 있다는 생각을. 그러니 여러분 학생일 때
시 쓰기 바랍니다. 괜히 선생을 괴롭게 만들지
마세요. 자기소개는 Q&A 게시판에 말고
부탁합니다. 앱으로 알림 오고 내가 답변을
남겨야 해서요. 안녕하세요? 하면 안녕
하세요 답하는 순간이 매번 기쁨이었음
합니다. 시인은 고향이 없다는 말 기억
하지요? 수시모집 실기심사 2회 들어갔고
6년간 재밌었네요. 졸업생도 볼 수 있게
자유게시판에 쓰고 말 예정. 혹시 딴 선생께
다르게 배우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정답을
배웠다 믿기를요. 후회는 안 합니다. 하나
걸리는 거 날씨 좋아 야외수업 하자는 말들
외면했지요. 우리의 시간이었으나
그래도 되는지 방침을
내가 알 수가 없어서요.
시 「퇴임사」 전문
김상혁 시인의 작품 대부분이 어렵지 않은 시어와 표현들로 쓰여 있어서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퇴임사」라는 시가 가장 좋았습니다. 제가 지금 대학생이어서 그런 걸까요? 시에 쓰인 배경과 상황들이 제가 다니는 학교와 겹쳐 보여 무척이나 잘 그려졌어요. 물론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계약직 시간강사’로서의 설움과 씁쓸함, ‘시’를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유머, 그리고 ‘야외수업’을 가지 못해 토로하는 아쉬움까지. 다채로운 감정을 넘나들며 시적 정취를 풍부히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았습니다.
그 외에도 ‘집에 있으면 학원 가기 싫고 학원 가면 집에 오기 싫은 / 앞일 같은 거 잘 모르겠고 좋은 것 싫은 것 한데 모아 두고 싶은 마음인 것’(시 「한 세계」 일부) 구절에서는 웃픈 공감이 갔고, ‘귀여운 척한 적 없어요. 귀엽다는 말에 혹할 만큼 어렸던 적 없어요.’(시 「물 흐르게 물건 떨어지게」 일부)에서는 냉담한 현실 속 한 개인의 서글픈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감탄하며 읽었어요. 고작 한 구절에 불과한 문장인데도 이렇게 묵직한 울림을 전하다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시를 읽을 때마다 매번 놀라곤 합니다. 좋았던 다른 시인의 시도 있었지만, 김상혁 시인의 시집을 꼭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꾸준히 찾아 읽을 것 같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이 책으로 시의 세계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