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문학의 젊은 작가들이 유수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 듯하여 독자로서 내심 흐뭇하고 뿌듯하다. 이번에 읽은 전지영 소설가의 『타운하우스』 또한 마찬가지다. 그 어려운 중앙지 신춘문예를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두 곳에서 동시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지라 『타운하우스』 역시 그런 책이 될 것 같아 걱정어린 마음 또한 들었다. 다행히도 기우였다. 갖고 있던 기대를 훨씬 크게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들을 『타운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애란 작가는 단편 소설을 쓸 때 주인공에게 약간의 ‘죄’를 짓게 한다고 했다. 그 지점에서 궁금해지는, 질문이 촉발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말을 북토크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 읽은 『타운하우스』 역시 그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마냥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현실 속 우리들 마저 종종 저지르는 ‘실수’와도 같은 약간의 죄를 저지르는 입체적인 인물들. 그리고 그 죄를 마주하며 벌어지는 그 후의 이야기들. 그래서인지 『타운하우스』에 수록된 단편들의 서사는 장르소설 못지 않게 매우 흥미롭다.
이를 테면, 「소리 소문 없이」와 「뼈와 살」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남은 아이」는 교내 성추행을 저지른 학생의 엄마 시점으로 전개된다. 또한 「맹점」은 개업의, 제약회사 영업사원, 보험 설계사 셋이서 공모하고 환자의 수술비를 뒤로 넘기는 이야기이며, 「쥐」는 군인 남편의 의뭉스러움을 애써 묻어두고 모른 척 하려는 아내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 또한 현실에서 으레 저지를 법한 실수들이거나, 혹 그렇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어딘가에서 실제로 자행되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지영 작가는 이런 서사적 흥미를 구태여 자극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하고 담담한 문체로 인물을 그려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지영의 문체가 그런 현실의 소슬함을 더더욱 짙게 하는 듯했다. 특히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에서 그런 점을 강하게 느꼈다. 이 소설은 12년 전 둘째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중년의 부부가 등장한다. 이들은 소설 속에서 별다른 큰 사건을 맞닥뜨리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꾸준히 증오하고 피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 점이 별다른 전환 없이 계속 이어지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다. 두 사람 사이의 뒤틀린 관계가 뿜어내는 음산하고도 처연한 긴장감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다.
아마도 나는 『타운하우스』를 시작으로 전지영이 쓰는 모든 작품을 따라 읽을 것 같다. 최근에 들어 전작을 찾아 읽는 작가들이 무척이나 많아져서 즐거운 부담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