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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님의 서재
  •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 14,400원 (10%800)
  • 2013-06-25
  • : 19,686

이 책을 단순히 ‘산문’이라는 갈래 아래에 놓아도 될까? 『밤이 선생이다』 속의 글들은 서점에 흔하게 널려 있는 여느 산문들과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진다. 그저 저자의 생각을 두서없이 나열해놓은 일반 에세이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에 대한 저자의 심도있는 고찰이 담겼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곧 인생에 대한 교훈과 성찰로 이어진다는 것. 게다가 그런 깨달음을 어렵지 않고도 매끄러운 문맥과 담백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어렵지 않게 전달하니, ‘잘 쓰인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밤이 선생이다』로써 깨닫는다. 미천한 나의 글은 이만 줄이련다. 다같이 고 황현산 선생의 글을 감상하자.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12p)

이런저런 사건들이 늘 ‘어느 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오는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변덕스럽지 않기는 어렵다. ‘어느 날 갑자기’ 앞에서 놀라지 않게 하는 일은 인문학이 늘 내세우는 일이고, 사실 내세워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미래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일, 언제 어디에 소용될지 모르는 일에도 전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다. (57p)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늘 성장통이란 말을 끄집어내게 된다. 그런데 합당한 말인가. 그 말이 비록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가득 안고 있다 하더라도, 젊은 날의 고뇌와 고투를 그 미숙함의 탓으로 돌려버리게 하기에도 십상이다.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88p)

언어의 깊이가 주는 정서를 학문의 습득과 함께 누리지 못하는 탐구는 모든 지식을 도구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 강의가 사상 통제를 위해 실행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상 통제의 필수조건인 언어 통제가 그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염려한다. (127p)

개는 내내 주인을 따라가지만 언제나 주인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 (152p)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184p)

유행에 기민한 감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싫증이 있을 뿐이며, 새로운 것의 번쩍거리는 빛으로 시선의 깊이를 대신하려는 나태함이 있을 뿐이다. (192p)

상대방은 사람이 아니니 거기에 어떤 일을 저질러도 죄의식을 가질 것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들만이 아니다. 공격적 마케팅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도 사람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사람을 분석하여 그 속에서 조종 가능한 물건 하나를 찾아낸다. (243~244p)

나로서는 뿌리가 없고 본디의 결에 거슬리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관용으로 굳어졌으면 그것을 새로운 뿌리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어떤 표현법이 일어나 영어에서 연유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언중에게 그 표현이 큰 무리 없이 이해된다면 이미 우리말 속에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47p)

진실보다 먼저 만들어진 말들은 진실보다 시나리오를 더 사랑한다. (260p)

국제 외교나 통상에서 그때그때마다 현행의 잣대에만 매달리다보면 우리 같은 처지의 국가들은 늘 한 걸음 뒤지게 마련이다. 그 잣대의 향방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파악하고 그 고향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2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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