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이승준님의 서재
  • 어떤 비밀
  • 최진영
  • 15,300원 (10%850)
  • 2024-10-25
  • : 13,178

대중의 큰 사랑을 받지만, 유달리 나랑은 맞지 않은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최진영 소설가다. 최진영의 유명한 작품들을 여러 차례 도전해보았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 단 한 권도 완독하지 못하였다. 이 말을 본 최진영의 팬들은 내게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대체 왜요? 그 좋은 걸 어째서 읽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나는 이 질문으로 되묻고 싶다. “그 마음을 어떻게 버티셨어요?”

싫다는 게 아니다.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다만 최진영의 작품 속 인물들이 처해지는 상황이 너무나 어둡고 힘든데, 최진영의 문체가 섬세하면서도 수위가 높은 묘사다보니 나에게 전달되는 감정의 파고(波高)가 견디기 힘들 만큼 거센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어떤 비밀』이라는 산문집을 읽으면서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었고, 이제야 비로소 최진영 작가의 작품을 다시금 펼쳐볼 용기가 난다.

소중한 사람과 오래 연결되려면 나도 같이 애써야 한다는 걸. 누군가를 향한 이유 없는 걸음과 무리 없는 만남이 절대 흔치 않음을 이젠 안다. (51p)

나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있는지에 주목합니다. 당신의 ‘위치’가 아니라 ‘상태’를 듣고 싶습니다. (83p)

당신은 언제 어떻게 나의 사랑을 체험할까. 나는 영영 그것을 모르고 싶다. 그것만은 상상하거나 짐작하고 싶지 않아. 그러나 당신의 사랑이 다하는 순간은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싶다. 주위 사람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도록 두지 않길. 그래도 사랑일 거라는 헛된 착각 속에서 살게 하진 말아줘. (111p)

최진영은 사랑에 진심인 듯하다.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다. 작가는 사랑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을 느끼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비참할 수 있나 싶은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깊게 숙고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마음이 결국은 소설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최진영에게 소설은 곧 사랑이다. 소설에 대한 고찰은 사랑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한 편의 소설을 쓰고 나면 나는 쓰기 이전과 미세하게 다른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건과 인물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감하고, 그 세계에 깊이 들어가본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어요. (…) 나는 쓰면서 배웁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을 씁니다.” (130p)

나를 위한 사랑. 내가 필요해서 열심인 사랑.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자 터널이 끝났다. 세상이 열렸다. 이전까지는 상대를 위해 희생한다고, 억지로 맞춰준다고, 상대가 나를 견디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깨진 독에 물 붓기. 사랑을 믿지도 않으면서 갈구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244p)

소설이든 시든 문학에는 필히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가치에 대한 천착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일상의 언어로 쓰인 산문은 또다른 매력을 가지는 것 같다. 스스로를 사랑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번 독서에서 최진영 작가의 애절한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산문집 『어떤 비밀』을 읽으며 소설, 곧 ‘사랑’에 대한 최진영의 생각을, 마음을, 사랑을,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소설을 쓰면 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그 세계로 도망칠 수 있다 현실의 삶에서 처첨하고 비루해질 때, 지루하고 권태로울 때, 힘들고 외로울 때 나는 주문을 외운다. 괜찮아, 나에겐 소설이 있어. 그 주문을 외우면 버틸 수 있다. 하지 못한 말, 할 수 없는 말을 소설에 쓸 수 있다. 그때 내가 좀 아팠어. 서운했어. 사실은 내가 널 사랑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독자들은 내가 소설에 숨겨둔 진심을 ‘숨은그림찾기 고수’처럼 찾아낸다. 그리고 내게 속삭인다. 있잖아,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어.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286p)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