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포터11기
지금까지의 모든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어본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수상작들 간에 얼마간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보통 ‘문학’에서 으레 느껴지곤 하는 감수성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섬세하고도 예리한 감각으로 쓰여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울림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리고 서사 자체가 가진 힘을 토대로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어 책장을 넘기게 하는 것.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은 대체로 후자, 즉 서사가 가진 매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작품들이 많았다.
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11p)
이번에 읽은 『말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의 첫문장으로 단숨에 나를 사로잡더니, 휘몰아치는 전개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들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부에서 주인공 ‘장’에게 닥친 불행을 보여주고, 2부에서는 말뚝들이 들어닥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들을 그려내며, 3부에서는 그 모든 일의 마무리를 짓는다. 서늘한 현실과 기발한 상상력을 적절히 조합하여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 작품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문학적 가치가 대단한 것인지는 단 한 번의 독서로는 그리 잘 체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의 말미에 수록된 서영인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더랬다.
『말뚝들』이 전달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바로 이 ‘눈물’이라고 나는 읽었다. 제련소에서 유독 물질에 중독되어 죽은 외국인 노동자, 나흘째 잠을 못 잔 상태로 인도를 덮친 택배 노동자, 그 택배차에 받혀 숨진 아이, 그들이 모두 말뚝들이 되어 나타난 순간 이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그리고 말뚝들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우는 사람들의 눈물 역시 아마도 사회적 슬픔일 것이다. 『말뚝들』은 이 사회적 죽음과 사회적 슬픔을 추적하고 반추하며 기록한다.
나는 요즘 사회가 너무 팍팍해졌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공감이 줄어들고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게 편하면서도 씁쓸하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정보들의 범람과 너무 빠른 세상의 변화가 적잖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특히 쇼츠나 릴스, 거기서 나오는 여러 사건들의 요약을 보며 슬픔을 느끼다가도, 우리의 손짓 한 번에 바로 다음 영상이 재생되며 그런 아픔이 곧바로 사라지지 않던가. 어쩌면 『말뚝들』은 이러한 현 세태에 맞설 수 있도록 공감과 연대를 주창하는 소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회적 죽음’을 단순한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도록 나아가게 하는 것은 ‘사회적 슬픔’일테니 말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되었던 한 소방관님이 우울증을 앓다 결국 작고(作故)하셨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정말 간곡히 바라며, 더이상 또다른 죽음이 나오지 않기를, 이 또한 너무도 간절히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