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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님의 서재
  •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13,050원 (10%720)
  • 2017-06-28
  • : 47,856

『안녕이라 그랬어』를 감명 깊게 읽은 뒤 김애란의 단편집을 다시 한번 펼쳐볼 용기가 났다. 아무래도 『달려라 아비』, 『비행운』을 읽었을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어렸기에 그 안에 담긴 정서의 무게를 감히 헤아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때마침 부모님의 책장에 『바깥은 여름』이 있어서, 김애란의 단편집을 추천받을 때 항상 거론되었던 『바깥은 여름』을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바깥은 여름』을 읽기 전에 후기들을 몇 찾아보았다.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읽는 내내 눈물이 펑펑 났다는 감상도 있었고, 신파 마냥 억지스러운 울음 코드가 와닿지 않았다는 감상도 보았다. 그런 양극단의 후기들을 보고 나니, 이 작품의 무엇이 그토록 호불호를 나뉘게 한 건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뒤의 내 감상은… 그저 ‘무난’했다는 거다.

총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된 이 소설집에는,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상실하고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입동」에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잃은 부모가, 「노찬성과 에반」은 늙은 개를 곧 잃게 생긴 초등학생, 「건너편」에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고픈 여자친구,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시선으로 전개되니… 『바깥은 여름』은 무언가를 ‘잃게 될’ 예정이거나 ‘잃고 난 뒤’의 착잡한 심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 많았고, 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의 감상을 나뉘게 한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의 감상 모두 동의하지 못하겠다. ‘신파’라고 한다면, 정말 대놓고 “너 울어!!!”라고 하는 듯 억지스럽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이 필히 느껴져야 할 텐데,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전개되는 소설들이었다. 당연하다, 김애란인데. 초기작도 아니고 필력이 충분히 쌓일 만큼 쌓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한 감정 이입으로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지지도 않았다. 결국 「입동」에서 보험금을 통해 빚을 갚게 될 때 탄식어린 한숨을 내뱉었을 뿐, 「풍경의 쓸모」에서 주인공이 교수에 임용되지 않았을 때 부조리한 현실감이 물씬 느껴져 납득하는 차원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 결코 감정의 동요가 격해져 눈물이 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바깥은 여름』 만의 장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감정선이 휘몰아치는 것보다 잔잔한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오히려 더욱 강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애란의 문장은 그런 점을 특히 잘 살리는 것 같았다. 좋은 문장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던 독서 시간이었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밀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닌 피곤도 겹쳐 있었다. (14p)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20p)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213p)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제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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