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이승준님의 서재
  •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케트
  • 8,100원 (10%450)
  • 2000-11-20
  • : 29,441

제곧내. 제목이 곧 내용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만큼 작품을 온전히 설명하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또 있을까? 『고도를 기다리며』는 정말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만 담겨있는, 다소 난해하고 불가사의한 희곡이다. 이와 비슷한 후기들을 이곳 저곳에서 정말 많이 들어왔었기에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작품이 지닌 난이도가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여 그동안 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의도적으로 피해왔었다.

그러던 중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약간의 해설과도 같은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고도’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해석의 종류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다양한데 그 글에서 제시하는 고도는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었다. 고도가 죽음을 뜻한다는 시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풀어나간 그 글을 읽고 있자니, 어쩐지 나 또한 이 작품을 직접 읽고서 정말 고도를 죽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소 두려운 마음을 품에 안고 책을 펼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죽음은 어떠한 성질을 갖고 있을까. 일단 우리 모두는 언젠간 죽는다. 한 명도 빠짐없이 누구나 죽는다. 지극히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 죽는지는 모른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즉, 확실하지만 동시에 불확실한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올 때까지 오지 않지만, 아무리 늦어져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고도를 기다리며』 속 ‘고도’와 유사한 속성을 띠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지 않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들에게 고도가 오는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고도가 온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두 주인공은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그 당위에 대한 이유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데, 이 또한 죽음과 비슷하다. 우리는 언젠가는 올 것이란 확실성 때문에 죽음을 그저 기다리는 것이지, 그에 대한 의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죽음을 기다리는 우리내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끝끝내 고도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세상을 떠난 작가를 원망하며 책장을 덮는다.

고도가 내일은 꼭 온다고 그랬지. (사이) 그래도 모르겠어? (91p)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