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1기
은행나무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받게 된 책이다. 최근 은행나무에서 출간된 책들이 꽤 많아서 그런지, 빙의물 테마 소설집 『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과 카베 악바르의 소설 『순교자!』 중 한 권이 랜덤으로 발송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교생 실습 기간 동안 정신없이 지냈던 터라 어려운 책이 들어올 여유가 내 머릿속에 없을 듯하여 테마 소설집이 내게 오길 바랐건만… 그럼 그렇지… 500페이지가 넘는 『순교자!』가 떡하니 배송되고 말았다.
‘순교자’란 무엇일까. 네이버에 ‘순교’의 뜻을 검색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며 확실히 느꼈다. 이 책이 진짜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을… 더구나 같이 동봉된 편집자님의 레터에 적힌 ‘조금 마이너하더라도 이렇게 대담하고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나를 더 깊은 걱정의 늪에 빠뜨리고 말았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받았으면 읽어야지.)
“난 죽고 싶어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 우리 엄마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었어요. 반올림 오차처럼요. 엄마는 다른 사람 300명과 죽음을 나눠야 했어요. 우리 아빠는 웬 기업형 농장에서 수십 년 동안 닭똥을 치운 끝에 이름 모를 사람으로 죽었고요. 난 내 인생이, 내 죽음이 그보다는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47p)
『순교자!』는 부모 모두를 잃은 주인공 ‘사이러스’가 의미 있는 죽음에 집착하듯 ‘순교자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이러스는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를 ‘허무맹랑’하게 잃었다. 미군이 이란의 여객기를 적기로 착각하여 미사일을 발사하는 바람에 그대로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사이러스는 어머니와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인지 일부러 어머니를 애도하는 날을 만들어 오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는 사이러스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아버지 또한 어머니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사이러스는 자신의 죽음을 부모의 죽음과는 달리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그는 ‘순교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병원에서 신참 의사들을 위해 죽어가는 환자 연기를 하기도 하고, 순교자들의 사진을 방에 붙인다든가 순교자들에 관한 시를 쓰기도 한다. 즉, 사이러스는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쯤되면 눈치챘겠지만, 『순교자!』는 그리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다. 다만 좋은 소설이라는 점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 사이러스가 바라는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순교’여야 했다. 자살과 순교를 구분짓는 것은 무엇일까. 무의미에서 의미로 향하는 과정을 사이러스는 자살이 아닌 순교라고 보고 유의미한 죽음을 그렇게나 절실히 바랐던 걸까. 삶과 죽음의 대해, 그리고 죽음의 허무와 유의미성에 대해 탐구하는 소설이라는 한줄평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만약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아래에 적을 옮긴이의 말 속 한 구절을 읽길 바란다. 분명 이 책이 궁금해질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자살을 이야기하고, 죽음의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교를 이야기하면서도 사실 사이러스는 알고 있다. “죽음 자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의미도 없다.” (5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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