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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님의 서재
  • 태고의 시간들
  • 올가 토카르추크
  • 16,200원 (10%900)
  • 2025-04-25
  • : 1,085

#은행잎1기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에 대한 좋은 평들을 정말 많이 봐왔지만, 나는 그닥 즐기지 못했다. 단편보다 장편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 탓이었다. 50명이 등장하는 대형 옴니버스 연작 소설이라니, 내게는 자꾸만 몰입하려다 끊기는 듯한 느낌이 여간 취향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태고의 시간들』은 더하다. 자그마치 84개?!

‘태고’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84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같은 자리에 모여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시키는 소설이다. 가상의 공간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천사나 신화 등의 환상 문학적 요소를 더해 신비감을 조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1,2차 대전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역사적 사실감까지 놓치지 않는다.

1939년 여름, 신이 주위의 모든 곳에 있었기에 수상쩍고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처음에 신은 가능한 모든 것들을 창조했다. 하지만 실제로 신은 전혀 일어날 수 없거나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들, 다시 말해 불가능한 것들의 신이었다. (194p)

쿠르트의 병사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쿠르트는 그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총을 쏜 건 그들이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공포와 고향을 향한 향수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그들은 총을 쏘았다. (207p)

파베우는 자신이 길가의 한옆에 내던져진 돌멩이나 버려진 아이 같다고 느꼈다. 그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이 거친 현재의 시간 속에서 바닥에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운 채 스스로가 매초 무(無)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생생히 감지했다. (314p)

하여 이 작품이 올가 토카르추크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게 한 수작이라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장편을 좋아하는 내게는 조금 힘들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호흡이 긴 장편을 좋아한다면 쉽게 추천하지 못하겠지만, 짧은 이야기로 끊어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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