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1기
아마 2025년 ‘올해의 영화’로 「서브스턴스」를 꼽게 될 듯하다.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담고 있는 메세지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으니, 아마 올해 안에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서브스턴스」를 능가하는 여운을 선사하는 작품을 찾기는 힘들지 않을까. (설마 귀칼 극장판이…?) 그런데 이번에 ‘은행잎 1기’로 읽게 된 작품 『호르몬 체인지』은 그런 「서브스턴스」를 떠올리게 했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비슷했고, 서사가 진행되는 방향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둘 다 정말 재미있었다.
근미래의 대한민국은 ‘늙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셀러’라 불리는 젊은 사람들의 호르몬을 빼내어 ‘바이어’ 노인에게 주사하면, 노인들은 젊어진 몸으로 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완전하게’ 발달되지 못한 탓일까, 셀러의 입장에서 큰 신체적 부담과 위험을 피할 순 없었다. 호르몬을 추출하는 수술을 받은 뒤에는 2~3주 간 좀비처럼 누워만 있는 채 회복기를 거쳐야 하고,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호르몬 체인지』는 거대한 옴니버스 마냥 꽤 많은 인물들의 시점이 짧은 챕터마다 교차하며 전개된다. 그렇기에 바이어의 시선, 셀러의 시선, 바이어 가족의 시선, 셀러 가족의 시선, 호르몬 체인지 수술을 영업하는 인물의 시선 등등 하나의 소재를 두고 정말 많은 입장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젊음에 대한 욕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 서브스턴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이 책이 영화보다 더욱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왜 젊은 몸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렇게 젊어지면 행복한 삶을 보내는가, 신체적 위험이 따름에도 어째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가, 그런 사람을 보내는 가족들은 어떤 심정인가. 각각의 입장들이 모두 납득이 되어 모순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 너무너무 재밌게 읽은 영화 서브스턴스의 한국문학 버전 『호르몬 체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