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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님의 서재
  • 프란츠 카프카
  • 11,250원 (10%620)
  • 2025-02-26
  • : 655

#빛소굴세계문학전집서포터즈

4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의 작품이지만,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어떻게든 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토지측량사 K와, 이를 막으려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400페이지 내내 계속해서 반복된다. 정말 ‘처절’하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갖가지의 노력을 끈질기게 발휘하여 K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그 매번의 시도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좌절되곤 한다. 이들 역시 K의 노력을 악착같이 방해하고 무마시킨다.

사실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받아들 때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셔서 걱정이 조금 크긴 했지만, 막상 받아보니 작품 자체의 난이도가 높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단 번역이 아주 유려하고 잘 읽혔다. 문체의 가독성에 예민한 나로서는, 좋은 번역 덕에 작품 내용이 머릿속에 잘 그려져서 어렵다는 감상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내용의 흥미도 측면에 있어서는 조금 힘들긴 했다. 하나의 큰 사건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성으로 들어가려는 K의 노력 -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방해’의 작은 서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인, 심지어 ‘미완성’으로 끝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딘가…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카프카가 왜 이 작품을 쓰고자 했는지를 곱씹듯 생각하게 되었다. 카프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진 않더라도 그 존재 만큼은 분명하게 감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해설을 비롯해 다른 여러 사람들의 감상들을 찾아보았고, 그렇게 막연했던 주제의식이 조금은 밝아지는 듯하여 이에 대해 조금 적어볼까 한다.

실존주의 문학을 다룰 때 항상 언급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부조리’, ‘이치에 맞지 않다’는 사전적 정의에서 조금 더 나아가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이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과 세상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혼돈스러운 상태 사이의 갈등’.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는… 불행한 일이 아무런 인과없이 일어날 수 있는 ‘불합리’한 것이라는 말이다. (철학 무지랭이가 겨우 받아들인 개념이니,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이를 바탕으로 <성>을 본다면, <성>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K의 노력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마을 사람들’이 바로 우리 삶의 ‘부조리’를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불행들, 이를테면 부모님의 죽음이랄지 뜻하지 않은 질병이나 사고 등은 특정한 ‘인과’를 거쳐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불행들은 아무런 징후나 조짐 없이 정말 ‘갑자기’, ‘느닷없이’ 우리에게 닥친다. 소설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체 왜 K를 방해하는지, K가 성에 못들어가게 막는지에 대해 일언반구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는다. 그저 훼방만 놓는다. 어쩐지 우리 삶에 닥쳐오는 부조리와 비슷하게 보이지는 않는가?

그럼에도, 불현듯 부조리가 우리 삶에 닥쳐와도,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버티고 살아간다. 그런 우리의 모습 역시 소설 속 K의 모습과 닮아있다. 아무리 막혀도, 좌절되어도 K는 성에 들어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주저앉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라는 부조리를 마주하는 K는 바로 ‘우리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거야말로 ‘카프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아닐까. 느닷없이 찾아오는 부조리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라는 것. 부조리적 상황만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고차원적인 주제의식을 던지는 이 소설이 어째서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했는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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