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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인 박권상 씨가 70년대에 영국 특파원 시절 쓴 글에 '관대한 무관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박 씨는 가족과 함께 런던에서 살았는데  이사 온 뒤에도 이웃들이 인사는 하면서도 사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지 않았다는 겁니다. 도시 생활에서는 이것도 하나의 예절이 되겠구나 생각한 박 씨는 이런 태도를 관대한 무관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네요.

 

  가수 인순이 씨는 아버지가 흑인이어서 어렸을 때에 놀림을 많이 받았고, 특히 피부색과 곱슬머리 때문에 열등감을 지녔다고 합니다.그러다가 아버지 나라인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내 아버지는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말해도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인순이 씨는 처음엔 이상하게 여겼죠.우리나라에서는 더 알고 싶어  많은 질문공세를 퍼붓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하지만 인순이 씨도 박권상 씨처럼 그런 무관심에 익숙해지고 편해지면서 그런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영국과 미국을 들먹일 것도 없이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은 좀 유별나죠.최근 중국인 관광객인 유커들이 한국을 많이 방문하는데 그들 중에는 일본을 방문한 사람들도 있습니다.중국인들이 모여 다니면 아무래도 좀 시끄럽죠.일본에도 "중국사람 잠꼬대 같다"는 표현이 있습니다.뭔지 모를 소리를 계속 해대는 것을 말합니다.하지만 중국인들이 시끄럽든 말든 일본인들은 별로 안 쳐다보는데 한국인들은 쳐다보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다르고 생소한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일본인에 비해 미숙하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 어떤 장애인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장애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자신들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라고...특히 불쌍하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찬다거나 연민에 가득찬 표정까지 곁들이면 모멸감까지 생긴다고...그러면서 그 장애인이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그냥 무관심하게 지나가라고요.아마 그 장애인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관대한 무관심! 하고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했습니다.그들 역시 자신들을 특별히 주목하지 말아달라는 글을 올렸습니다.배려나 위로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 대하듯 해달라는 뜻이지요."어머머...쟤들 단원고 애들 아니니?" 하고 수군수군 댄다거나...괜히 위로랍시고 상처만 덧내는 말을 건네느니 그냥 관대한 무관심으로 대해달라는 것이죠.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는 말이 거의 고정관념처럼 되어버렸습니다.무관심이 마치 큰 죄악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죠.하지만 도시화가 높아진 현대 사회에서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일이 훨씬 많습니다.그래서 타인과의 접촉에서 관대한 무관심은 반드시 지녀야 할 미덕이 되었습니다.남에게 상처 주는 질문을 한다거나 빤히 응시한다거나 해서는 안 되죠.관대한 무관심이 있다면 그 반대로 잔혹한 관심도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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