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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곰돌인데  2025/10/09 23:39



제목 : 가버나움

감독, 나딘 라바키 / 프랑스 / 2018

- 제 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워상 수상.

- 뉴욕타임즈 올해의 영화 TOP 10 선정.

- 제 76회 골든 글러브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 전세계 영화제에서 관객상 8관왕 수상.

--------------------------------------------------------------------- 이야기.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출생기록조차 없이 살아온 어쩌면 1...

movie.naver.com

시작부터 강렬하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합니다"

주인공인 자인의 대사다.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하면,

빈민굴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수많은 형제들과 살아가는 자인.

먹을 것, 입을 것은 물론이고 누울 곳조차 없는 그곳이 그(들)의 집이다.

이런 와중에도 부부의 금술은 어찌나 좋은지, 현대판 흥부집이다.

자인은 동생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어여쁜 여동생 사하르가 여인이 되는 성장기가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부모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과 자인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현실.

결국, 자인은 가출을 한다.

떠돌던 자인은 라힐을 만나게 된다.

라힐은 불법체류자에 미혼모다. 그녀는 체류증을 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면서 판잣집에서 산다.

청소일을 할 때면 아이(요나스)를 화장실 한켠에 놔두고 돌봤지만 이제는 자인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간다. 자인은 마치 자신의 동생처럼 자식처럼 아이(요나스)를 돌본다

비록 남이 먹다 버린 케이크를 주워와 생일파티를 하지만, 그들은 잠시 행복함을 맛본다.

하지만 신은 그들에게 더 이상의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인, 라힐, 요나스는 뿔뿔이 흩어지고,

여동생 사하르에게 일어난 불행을 전해들은 자인은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그만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갇힌다. 감옥은 욕설과 구타가 가득한 곳이다.

신은 하나를 앗아가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준다고 한다. 인간이 살아갈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지만, 자인은 대체 무엇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자인은 부모를 고소하고, 법정에서 부모를 마주한다.

그리고 판사에게 말한다. "부모님을 고소합니다."

---------------------------------------------------------- 나의 평~

- 영화는 던지는 메시지만큼이나 강렬하다. 하지만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감독 나딘 라바키의 이전 작품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감독님은 사이사이 미소를 짓거나 웃을 수 있는 즉 무거운 주제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두신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나딘 라바키 감독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1차 후보에 오른 최초의 아랍 여성감독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자인 역의 자인 알 파리아는 실제 거리에서 배달 일을 하던 소년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그가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며 영화관계자들이 그와 그 외 사람들을 계속 돕고 있다는 자막을 보게 된다.

- 영화는 다큐처럼 현실적이면서도 극도로 영화적이다. 지극히 감성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극도로 이성적이다. 마치 헤겔의 명제처럼 말이다. 또한 변증법과 함께 관객들은 희망과 절망을 보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를 떠노는 느낌으로.

- 몇 발짝 물러서서 보면, '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4)가 보일 것이고, 천착해서 보면, 인물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만큼이나 엄청난 무게의 주제를 가진 난생 처음보는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부모와 아이의 문제, 다산과 난산으로 인한 죽음, 빈부격차, 인권 사각지대의 실태, 남자들의 가학적 성욕과 무책임 그리고 이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도록 길들여진 여성들, 출생과 죽음, 가족의 붕괴와 해체, 인간의 기본 인권의 문제, 이상과 현실, 나약함과 비겁함,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불행, 최악의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욕망과 처절한 고통 마저도 삼켜버리는 망각의 늪 등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복잡다단할 뿐 아니라 하나같이 무겁고 난해하다. 하지만 어렵게 꼴을 맞추면 결국 우리 인간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나와 상황과 환경은 다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흐른다.

- 영화는 우리에게 '해답'이 아닌 '질문'을 던진다. 눈 돌릴 것인가? 똑바로 쳐다 볼 것인가? 아이의 절규같은 외침과 부모의 피를 토하는 듯한 항변이 팽팽히 맞서고, 어느 누구도 쉽게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을 재판이라는설정을 통해 보여주며, 과연 여러분이라면 어떤 답으로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묻는다.

이야기는 이런 질문과 함께 확장되어, 출생과 사망(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라는 메타포의 대비)의 담론에 도달한 영화는 주인공의 억지(강요) 혹은 자의(자발)가 동시에 읽히는 미소짓는 얼굴로 마무리된다.

- 좋은 영화는 다양하게 읽히며 해석된다. 이 영화 역시 그런 특징이자 장점을 지녔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보려고 하는 만큼 보이고, 읽으려고 하는 만큼 읽힌다고. 보는 이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이 영화의 스펙트럼은 무한히 넓어질 것이다. 끝으로, 길거리 캐스팅의 기적이라 불린 배우들의 연기는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경이롭다. 그들이 가짜가 아닌 진짜였기 때문이라 해도 말이다.

- 참고 >

가버나움 Capernaum



‘나훔의 마을’이란 뜻. 갈릴리 호수 북서 해안의 성읍. 신약에만 언급되는 성읍인데, 이곳은 신약 당시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이 있는 큰 성읍이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세리 마태는 이곳 가버나움 세관에서 제자로 부름받았다(마 9:9-13). 예수께서는 이 마을에서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특히 백부장의 중풍병 걸린 하인(마 8:5-13), 앓아 누운 베드로의 장모(마 8:14-15), 들것에 실려 온 중풍병자(막 2:1-12) 그리고 왕의 신하아들(요 4:46-54) 등을 치유하신 사건이 있었다. 또 이곳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五餠二魚) 사건과 관련하여 생명의 떡에 관한 강화와 많은 다른 말씀들을 전해주셨다(막 9:33-50). 하지만 이런 놀라운 기적과 교훈에도 불구하고 가버나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은 가버나움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마 11:21-24; 눅 10:15).

[네이버 지식백과] 가버나움 [Capernaum]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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