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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시대의 유령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권력 주변을 떠도는 날파리들인가 아니면 억울하게 조작사건에 연루되어 희생 당한 사람들을 말함인가. 근대화의 일꾼, 산업화의 전사라는 지배담론 속에서 목소리(voice)를 갖지 못해 유령과 망령으로 치부된 서발턴들의 서사를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서발턴이란 지배적인 앎에 의해 배제 당하고 침묵을 강요 당한, 전체적 사실에 부수하는 국부적 조각이자, 심지어 저항담론에 의해서도 가시화될 수 없거나 본질주의적 집단 주체로 호명되는 대상에 불과한 전(前) 주체 내지 비(非) 주체적 존재이다. 이 책 속의 서발턴들은 도시 하층민, 이주민, 언어를 상실한 지식인, 소년원생 등이 그들이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비정상인들인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종종 거론하는 푸코를 인용해 보자. 근대사회 권력이 요구하는 '정상적인 정신'이란 생산적인 노동활동, 집단행동에 종사하여 경제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이며, 정신질환인 광기는 경제활동에 비생산적이므로 '이상성 병리성'으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사회는 과학지식, 의학지식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였으므로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신비성, 신성성'으로 평가되는 광기는 공동체의 가치관을 통일하는 종교활동에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배제하지 않았다고 한다. 푸코의 <광기의 역사>와 <비정상인들>에 의하면 광기가 19세기가 되면 정신의 '병'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서의 정신의학의 탄생이라는 과정을 17~8세기에 걸쳐 광인에 대해 대대적으로 행해졌던 감금의 실천과 그 변용의 분석을 통해 볼 수 있다. 정신의학 지식이 발달한 근대사회에서는 '정신의 정상성과 이상성의 구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것은 확실하며, 그 정상성과 이상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권력시스템이 요구하는 '생산적인 사회생활에의 적응'에 있다. 푸코가 말하는 '권력'이란 사회공동체의 생산성과 생식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나 가치인식을 침투시키는 힘이며,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형성하는 규율훈련시스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조국 근대화를 지상과제로 내세웠던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진 이질적인 요소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거하고자 했다. 1961년 군사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전통적인 집을 파괴했고, 4.19시절 거리를 활보했던 소년들을 우범소년으로, 그리고 동네무당들을 위험한 존재로 낙인 찍어 공동체로부터 추방했다. 그들은 공동체로부터 주변화, 타자화 되어 어떤 요구나 의견표명이 불가능한 유령과 같은 존재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이들 서발턴의 기억이나 경험이 그 자체로 순수하거나 혹은 지배적 담론이나 공시적 역사로부터 저항적일 것이라는 가정은 금물이다. 베트남 파병 변사나 광부들은 자신을 산업전사나 경제성장을 위한 역군으로 동일시하는 지배담론을  재현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군사독재정권의 규율시스템에 적응된 효과라고 할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서발턴에 대한 역사는 일반 시민들에게 공동체로부터 배제된 타자들에 대한 불쾌한 감정 혹은 잘 알지 못해 낯선 인상을 준다. 저자는 서발턴은 구원을 기다리는 식민화된 주체, 침묵하는 타자이기를 멈추어야 하는 동시에, 연구자의 재현될 수 없는 타자의 가능성이라는 진실에 눈 감아서는 안 될 것을 주장한다. 이 책에 이어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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