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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저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란 인물부터 살펴보자. 나무위키를 보면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동양사학자로 나이토 코난(内藤湖南) 이래로 유물사관 중심의 관념적인 중국사 해석에 실증주의적인 연구로 맞선 교토학파의 중심인물로 전후 일본 역사학계를 이끌었다고 한다. 중국 사회, 경제, 제도사와 동서양 교섭사에 관한 수많은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겼고 서아시아와 유럽과의 비교사적 관점으로 중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해석을 보여줬으며 박람강기하다는 평을 받는다.


2. 동양사학자로서는 뛰어난지는 몰라도 그 역시 일본인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몇 가지 예를 이 책에서 발췌해 보자. 64쪽 관우가 방통을 죽이고 위명을 떨칠 때, 오나라가 배후를 습격하여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차지한 것을 두고 태평양전쟁 말기 소련이 중립조약을 무시하고 일본의 북방영토를 점령한 것을 연상시키는 비열한 행동이라고 평가한다. 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도처에서 살인, 강간, 약탈을 자행한 일본만큼 비열한 나라가 있었던가. 223쪽 둔황석굴이 발견되자 유럽인들이 불상의 머리를 자르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오히려 일본군의 화북 점령 중 일본학자가 석굴의 조사를 시행하고 그  보호에 힘썼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숫한 문화재를 탈취해간 것이 문화재 보호인지 의심스럽다.


3. 인명표기에 몇 군데 오류가 있다.

65쪽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가공인물인 반봉(潘鳳)을 세 번이나 번봉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심지어 괄호 안에 한자표기까지 하고도...

72쪽 진군의 한자표기를 陳羣이 아니라 陳群으로 하고 있다. 羣과 群은 발음도 같고 의미도 같지만 인명이기 때문에 정확해야 한다. 

288쪽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왕자 여풍을 보내 부흥을 꾀했다고 하는데 이 오류는 저자의 실수인지 역자들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백제왕족의 성씨가 부여씨이고 이름이 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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