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만 들었을 땐,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힐링에세이류겠거니 하고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는데 책을 받아들고 보니 두께가 꽤 되는 소설집이라 요즘 책에 쉽게 집중을 하지 못해서 완독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알바가는 지하철역에서 책을 폈는데, 생각보다 쉽게 몰입이 되는 도입부에 점점 궁금해지는 뒷 이야기에 생각보다 빨리, 깊게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던 것 같다.
우선 나는 고양이를 꽤 오래 길렀고, 혼자 살게 되어서도 임시보호를 하며 고양이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창문에 고양이가 나타나 사라를 입양하겠다고 뜬금없이 선포해도(심지어 사람말을 하면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사실 조금 부럽기도 했다. 말하는 아비시니안에게 간택을 당하다니!
털뭉치들의 존재감은 사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 보다도 더 큰 위안이 될 때가 많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내 고양이를 쓰다듬는데, 고양이도 온 힘을 다해 화답해주는 그 기분. 아무것도 아닌 그 쓰다듬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온기를 전달해주는 지 키워보기 전까진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라에겐 그런 쓰다듬이 너무나 필요했고, 마침 시빌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게 되었다.
비록 고양이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존재가 바로 시빌이다. 우리는 사라의 입장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최대한 받아 들이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려고 노력해야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게 아닐까. 냄새를 맡아 보라는 것도, 음식물 하나를 씹는 데 온 우주를 동원하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정신과 의사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고양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사라의 마음이 동한게 아닐까 싶었다. 고양이들은 수천년 동안이나 인간들을 인도해왔으니까, 고양이의 말을 듣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닐테고. 작가가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를 화자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 같다. 고양이는 늘 '집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니까. 시빌의 조언을 듣고 실천하며 변해가는 사라의 삶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시빌을 깨워서, 하루하루 조언을 내리고 그 조언에 따라 사는 삶을 계획해 봐야겠다. 힐링소설은 처음인데, 종종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속에서 우주는 다시 태어나고 소멸된다. 우리는 무한한 하루의 속에서 다양한 색채들을 발견하고, 음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 자신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이 진리를 말해주기 위해 나타난 시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