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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di77님의 서재
  •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 이금이
  • 14,400원 (10%800)
  • 2020-03-25
  • : 10,13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승만 아내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녀는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프란체스카 도너 리. 1934년 10월에 이승만과 결혼하여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이승만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나조차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승만에 대해 주구장창 듣고 공부해왔지만 한번도 그의 아내에 관해서는 궁금해 해 본 적이 없다. 김구, 윤봉길, 안중근등 수많은 남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들어오면서 그 속에서 빛났던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가슴에 깊이 새겼을지언정 다른 여성들의 이름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가장 크게 주는 울림은 그녀들의 이름 그 자체라고 느꼈다. 버들, 송화, 홍주. 우리에겐 아직도 더 많은 이름들이 필요하기에.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1917년, 열 일곱살이던 어진말 출신 애기씨들이 마흔 한 살이 될 때까지 겪은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독립운동이 주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독립운동을 하러 나간 남편대신 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버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그 삶 자체가 처절한 독립운동이었다고 느꼈다. 또한 그 처절한 삶 속에는 늘 손잡아 주는 같은 여성들이 숨쉬고 있었다는 것도, 그늘에 가려 공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여성들은 늘 연대하며 함께 삶의 파도를 넘어 왔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은 어진말의 버들, 홍주, 송화가 사진신부로서 하와이에 시집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진신부란,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이 그 곳에서 신부를 구하지 못해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을 보내거나 받아 조선의 여자들과 혼인을 하기 시작했을 때 사진 교환을 통해 하와이로 이주한 조선 여자들을 일컫는다. 시집 가자마자 남편이 죽어 소박맞은 홍주는 제 2의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 아버지 몰래 사진신부가 된다. 송화는 무당인 할머니가 자신과 같은 취급을 받게 하지 않기 위해 사진 신부로 보내고, 버들은 하와이에 가면 돈 많은 신랑을 만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진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그 시절 조선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신부가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선택의 전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몇날 몇일을 고생해 도착한 하와이에서 버들과 홍주, 그리고 송화는 쓰디 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하와이에서 돈을 쓸어 담는다던 젊은 신랑들은 가난한 늙은 남자였고, 결혼을 위해 보낸 사진들은 대부분 그들 젊었을 때의 사진이거나 심지어는 다른 남자의 사진을 이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하와이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조선의 여자들은 늙은 남자 옆에서 엉엉 울기만 했을 뿐 돌아갈 차비가 있는 것도, 다른 선택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결혼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결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스스로 선택한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아주 많은 부분을 여성에게 감내하라고 등떠미는 이 세태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역사인 것 같아서 씁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여성들은 삶을 살아낸다. 운이 좋게 사진과 같은 남편을 만났지만 초반에는 곁을 내어 주지 않아 속 앓이를 한 버들도, 웃돈을 보내며 구애할 땐 언제고 자린고비로 돌변한 늙은 남편을 만난 홍주도, 매맞는 아내가 된 송화도, 식당일과 세탁소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남편의 밥상까지 차리며, 그렇게 삶에 닥쳐온 파도들을 넘어낸다.

그녀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존재였다. 멀리 있을 땐 편지로, 가까이 있을 땐 기꺼이 손 내밀어 주면서 삶에 시련이 찾아 올 때에나 기쁜일이 있을 때에나 그녀들은 함께 있었다. 아이 잃은 홍주의 입에 밥을 넣어주며, 갈 곳 없어진 송화를 집으로 들이며, 배척당하는 버들을 품어주며 그렇게 그녀들은 언제나 함께 있었다

n번방이 수면 위로 떠오른 요즘, 나는 더더욱 여성연대의 필요성을 느낀다. 여성의 고통에 가장 잘 공감해 줄 사람, 분노해 줄 사람은 결국 여성들이기에, 더 많은 여성들이 높은 곳에 올라있어야 하고 그 여성들이 다른 여성을 끌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파도를 넘어온 우리 여성들은 결국 싸워 이겨서 무지개가 서는 그 곳에서 웃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처음부터 줄곧 버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소설은 마지막에 이르러 버들의 딸 '펄'의 시점으로 바뀐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몰입감이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표지에 써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아주 놀라운 몰입도를 보여 주었다. 잘 쓰여진 소설은 한 편의 영화가 머리에서 상영이 되듯이 아주 매끄럽게 장면 장면들이 상상되는데 이 소설이 꼭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펄로 중심이 옮겨지고 조금은 철이 없고 어린 캐릭터인 펄이 담기에는 심도깊은 내용들이 나오면서 캐릭터와 서술에 괴리감이 조금 느껴졌다. 펄의 입장에서 쓰여야 했던 이야기임은 알겠지만 캐릭터 설정에 조금은 미스가 있었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 하지만 몰입도가 와장창 깨질만큼 큰 괴리감은 아니었고, 버들이 딸의 삶을 지지해주는 결말도 마음에 들어 가슴 벅차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서평이라는 것을 위해 책을 읽어 보았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가제본의 책을 읽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책을 받아서 읽을 때엔 작가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아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마음속에 떠오를 듯 말듯 한 작가가 있었는데, 이금이작가님이셨나 보다. 유진과 유진도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시절 모든 버들과 송화와 홍주들에게 정말 고생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그 때 잡았던 서로의 손이 놓지 않고 이어져 지금까지 왔다고, 나도 지금 그 손을 꼭 잡고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꼭 사서 읽어 보기를 권한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1917년을 살았던 그녀들의 모습에서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을 보고 또 한번 우리에게 여성 연대가 얼마나 필요한 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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