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이 시기 나는 중국 상해에서 첫 직장인 완구 회사를 다녔었다. 지금 생각하면 열악한 근무 조건의 공장에서 직원들과 밤 낮으로 일을 했다. 업무는 힘들었고 더구나 사스(SARS) 라는 전염병이 도시 전체를 눌러 앉힌 듯한 분위기 속에서 우울했다.
그러던 중 장국영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난 만우절 농담으로 여겼다. 하지만 밤 늦게 퇴근 후 티비를 틀어보니 사실이었다.
2009년 6월 25일.
이 시기 나는 가정도 꾸렸고 어느 덧 중국 생활에 잘 적응이 되었지만 여전히 회사는 바빴다.
정신없이 바쁜 업무와 가정 생활 중에 돌연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마이클 잭슨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장국영과 마이클 잭슨의 죽음.
누군가에는 홍콩과 미국을 대표하는 연예인의 죽음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그들은 단순한 대중 스타의 죽음이 아니다.
그때까지 내 안의 중요한 축을 차지했던 시대의 감수성이란 기둥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친구들과 비디오로 홍콩 영화를 보면서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그때 나는 홍콩말이 곧 중국어인 줄 알았다. 당시 영웅본색으로 인기를 끌었던 주윤발과 장국영 그리고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TV에는 CF 광고까지 나왔다.
그 당시 우리 세대에게 홍콩 스타는 지금 세계 문화의 중심인 한류 스타들과 비견될 정도 였다.
그 시절, 나는 장국영의 음반 레코드를 샀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를 꿈꾸었다. 침사추이의 화려한 네온 사인, 고층 건물 그리고 그 건물에 가려진 좁은 골목에서의 외로움 같은 것이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후 내가 대학 진학을 중문과로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시간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초등 4학년인 나는 마이클 잭슨의 <드릴러> 카세트 테잎을 샀다. 테입이 늘어질 때 까지 듣고 또 들었다. 공책에다가 테잎 속에 들리는 가사를 그대로 적어 외워 부르고 마이클 잭슨의 춤을 흉내 내고 연습했다. 급기야 소풍 날, 울기 등대 잔디 밭에서 반 대표 장기자랑을 나가 빌리진을 부르고 춤을 췄다. “빌리진~ 낫 마 러버~”를 열창하며 문 워크 걷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그 날 열광했고, 이후 전학 가기 전 까지 학교에서 내 별명은 마이클 잭슨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창피하고 우습지만, 나에게 장국영과 마이클 잭슨은 단순한 스타가 아닌 하나의 체험이었다. 80년대 팝의 황제와 90년대 홍콩의 스타는 대중들의 열광의 대상이었지만 홍콩은 반환되었고 스캔들은 황제를 가만히두질 않았다.
결국 이들 모두의 말년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서 더욱 안타깝다.
이들은 한 때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슈퍼스타에서 어떻게 충격적인 생을 마감한 스타가 된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비참한 슈퍼스타 중의 한 명에 불과 하겠지만 나에게 그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나를 성장 시킨 문화적 스승들이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나의 마음 한 쪽을 차지 했던 기둥은 무너진 것 같았으나, 그들에게 설레임과 위안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들의 육신은 사라졌으나 그들의 남겨 놓은 유산은 아직 남겨진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그들에 대한 회상을 최근에 읽은 <거울 속의 물고기>이란 책을 통해서 유식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식(唯識)이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唯) 식(識)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식(識)이란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는 감각 기관을 통해 얻는 경험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만의 꿈 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
밤에 잠을 자며 꾸는 꿈은 현실은 아니지만 꿈을 꾸는 당사자인 나는 꿈속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낀다.
도망치며 공포를 느끼고, 슬프거나, 웃는 상황들이 너무나 생생하다.
꿈을 꾸는 그 당시엔 그것은 현실이지만 깨는 순간,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유식은 묻는다.
지금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는 무엇인가? 꿈과 무엇이 다른가?
장국영은 내 사춘기 시절의 중국이었고, 마이클은 내 유년시절 동경이었다.
그들은 단순 외부 인물이 아니라 나의 식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린 존재와 다름 없었다.
유식에서는 이를 종자(種子)라고 부른다.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식의 깊은 층에 씨앗처럼 남기 때문이다.
유식에서는 이러한 기억과 경험의 씨앗이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 저장된 다고 본다.
멜로디 한 소절, 희미한 리듬과 춤 그리고 빛바랜 화면 속에 실루엣은 다시 선명하게 살아난다.
인간은 어쩌면 현재를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억과 업 그리고 감정이 만든 꿈 속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유식은 여기서 더 한 걸음 나간다.
꿈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마치 불교의 공이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것 같은 무상함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은 뜻으로 말한다.
꿈 속의 눈물은 진짜였고 아픔도 진짜였다. 그리고 사랑조차도 진짜였다. 다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세상은 허무한 것 같으면서도 경험의 감각 만큼은 너무나 선명하다.
우리는 모두 자기 식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생생히 경험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백진순님은 동국대에서 교수이며 이 책은 유식학을 처음 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이라는 유식경전에 주석을 달은 신라 시대의 원측(圓測)스님은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를 지었다. 바로 해심밀경소에 대한 번역을 한 저자는 고리타분한 옛 경전에 갇혀 있던 내용들을 지금 시대의 숨결로 다시 생명을 불어 넣어 준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래전 존재했던 누군가가 자신의 못다 한 과업을 이루기 위해, 혹은 영감을 불어 넣기 위해 후대 사람의 무뎌진 정신 속에 갑자기 끼어든 것 처럼 느껴졌다> P. 141
경전 번역이라는 어려워 보이는 문헌 해석을 저자 특유의 발랄한 상상과 결합이 되어 수 천년 봉인 되었던 유식이라는 난해한 경전을 쉽게 여겨지도록 해준 것이다.
군복무 시절, 난 김포 공항 경찰대에서 경비 임무를 맡았다.
1995년 가을, 공항 출국장에서 나와 동료들은 스크럼을 짜고 공항에서 출국하는 인물의 안전을 위해 경호 라인에 섰다.
천천히 팔을 흔들며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마이클 잭슨이었다.
옅은 미소와 함께 경호를 서는 우리 모두에게 눈 인사로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마이클 잭슨은 내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슈퍼스타가 꿈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만난 순간이 되었다.
그의 아주 선한 눈빛은 주위의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빛으로 바꾸는 것처럼 비현실적 이었다.
내가 서 있는 공항 출국장은 모든 장면은 무대 세트와 같았고 마치 슬로 비디오처럼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그 내 앞을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 내게는 영겁의 시간이 흐르는 듯한 감각으로 느껴졌다.
이것은 어쩌면 또 다른 꿈 속의 일부 였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에서 주인공 스파이크가 이런 대사를 친다.
“나는 어쩌면 깨어나지 못한 꿈을 보고 있는 것 같다.”
1997년 홍콩은 중국에 반환 되었고, 홍콩의 감성은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2003년 장국영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홍콩이란 낭만도 영면을 취한 것 같다.
1980년대와 1990년대 MTV 시대를 열고 팝의 황제가 되었던 마이클 잭슨은 2009년 영면을 취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나 이제 세상은 SNS, 유튜브, 넷플릭스 그리고 AI 시대로 연결 되었다.
아시아 엔터테인먼트의 시초였던 장국영과 20세기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유산은 이제 한류라는 이름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K-POP, K-드라마, 영화, 문화가 이제는 세계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을 보고 품었던 꿈은 이제 내가 아닌 우리나라가 꾸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끝없이 꿈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유식의 경전 속에 등장하는 거울 속에 비춰진 물고기가 아직도 헤엄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By Dharma & Mah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