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예전만 못한 듯하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레전드급 인기를 누리는 만화로 <원피스>가 있다. 이 만화의 특징은 고풍스런 범선들이 전세계 바다를 누비던 대항해시대를 모티브로 한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근대와 미래가 뒤죽박죽 섞인 느낌이지만 말이다. 심지어 주인공 동료 중에는 눈에서 레이저 나가는 사이보그 로봇까지. 배도 겉모습만 범선의 탈을 썼을 뿐 현대 기술을 초월한. 어차피 고증 따지면 지는 만화인지라.

현대식 회전포탑을 탑재한 원피스의 평범한 범선들. 포탑을 돌리는 동력이 뭔지는 둘째치고 나무 갑판이 포의 반동을 견딜 수 있을지.
이 만화의 주인공은 해적을 꿈꾼다. 물론 지나가는 배를 습격하여 삥뜯는 불한당같은 현실 속 해적이 아니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해적이라는 이유이다. 해적의 의미를 단단히 착각한 듯. 아무튼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위대한 항로'를 누비면서 모험을 즐기고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지만 공권력을 우습게 여겼다는 이유로 해군에게도 쫓기면서 인간으로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이들에게 바다는 도전이자 로망이다. <원피스>만이 아니다. 감독과 여배우가 함께 폭망했다는 <컷스로트 아일랜드>나 조니 뎁의 능청스런 연기가 대박을 친 <캐리비안의 해적> 또한 바다는 보물과 모험, 낭만의 장소이다. 지구가 아니라 이세계 속 대항해시대일지도.
물론 현실의 바다는 훨씬 냉엄했다. 오래전에 읽은 <전투함과 항해자의 해군사>라는 책에서는 그 시절 선원들의 선상 생활이 얼마나 열악하고 고달팠는지를 언급한다. 일단 바다로 나서면 보급이 끊길 수밖에 없으므로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의 항해 동안 먹거리라고는 소금으로 쩔은 염장고기와 벌레가 우글대는 쉽비스킷이 전부이고 제대로 씻지도 않은 오크통에 담긴 식수는 금방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나마도 제때에 항구를 못 찾아서 물과 식량이 도중에 바닥나면 굶주림과 기약없이 싸워야 했다. 하물며 수백명이 좁은 선상에서 부대끼며 살다보니 제대로 씻거나 했을 것이며 위생은 오죽했을까. 해적 따위보다 병균과 기생충이 더 무서웠을 듯. 특히 대항해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괴혈병일 것이다. 비타민C 결핍으로 생기는 이 병은 우리 현대인들이 겪을 일은 거의 없지만 처음에는 만성 무기력과 더불어 '괴혈병'이라는 말마따나 잇몸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치아가 죄다 빠지고 피부 곳곳에 혈종이 생기며 격심한 통증과 내출혈으로 고통을 겪다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말로만 들어도 끔찍하담서. 옛날 코에이 게임 <대항해시대2>에서 망망대해에서 헤매다보면 괴혈병이 돌고있다면서 선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던 악몽이 새록새록하다는.

<원피스>에서 괴혈병 치료법. 위의 두 놈이 다 죽어가는 환자한테 저런 식으로 라임을 꾸역꾸역 먹이니까 즉석에서 완치되어 어깨동무하고 코사크 댄스까지.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프랑스 어린이용 과학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위험하니까 어린이는 따라하면 안되요?
근무환경은 가혹했고 규율은 엄격했다. 로망은 개뿔, 꿈도 희망도 없는 것이 그 시절 바다였다. 하물며 해적은 <원피스>에 나오는 것마냥 무슨 목표와 신념이 아니라 그저 지옥같은 사축생활을 견디다 못해 도망간 사람들의 마지막 도피처일 뿐이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처럼 정식으로 영국 정부의 허락을 받고 해적질을 했다면 몰라도 대개는 한탕을 노리기는 커녕 토벌대에게 쫓겨다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일쑤였고 평균 수명은 20대를 넘기기 힘들었다고. 이게 다 19세기 말 영국 소설가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가 만든 이미지. 대항해시대 후반부로 가면서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바다는 위험한 곳이었다. 수없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사람을 무한정 갈아넣으며 결국 5대양을 정복했으니 유럽인들의 끈기에는 실로 탐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긴 요즘에 와서는 주4일제도 길다며 워라벨을 강조하는 것이 그동네이지만 말이다.

올초에 프시케의 숲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도서 <웨이저>는 원피스나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소년의 꿈을 담은 판타지가 아니라 바로 이런 대항해시대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논픽션 소설이다. 저자는 미국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주로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다루는 모양. 2017년에 국내에서도 개봉한 바 있는 <잃어버린 도시 Z>의 원작자이기도. 조금 앞서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에서 어벤져스 뉴페이스이자 고딩 스파이더맨으로 등장하여 "쟨 또 누구래?"했던 톰 홀랜드가 주연을 맡았다고 하는데 보지는 않았담서.

머리 대부분이 멸종하신 이 아재가 저자. 머리숱은 아쉽지만 저서는 죄다 공전의 히트를 쳤다고. 신은 인간에게 다 주지 않는다던가.
이 책은 18세기 영국 해군 소속의 550톤급 소형 군함이었던 웨이저(HMS Wager) 승무원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고난과 비극의 이야기이다. 1734년에 건조된 이 배는 원래 동인도 회사의 무역선이었지만 5년 뒤 영국 해군에 매각되었다. 대영제국 흑역사 중 하나이자 <젠킨스의 귀전쟁>으로 더 유명한 영국-스페인 전쟁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해군 장관이었던 찰스 웨이저(Charles Wager) 제독의 이름을 따서 웨이저라는 이름이 붙었고 1740년 8월 용맹하고 노련한 베테랑 군인이지만 지휘 경험은 부족했던 데이비드 칩(David Cheap)을 비롯한 250명의 선원과 28문의 대포를 실고 조지 앤슨(George Anson) 제독이 이끄는 소함대의 일원이 되어 남미로 출발했다. 그 중에는 훗날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이자 바람둥이로 이름을 남기게 되는 조지 고든 바이런의 할아버지였던 존 바이런(John Byron) 경도 있었다. 당시 나이는 불과 17살로서 갓 입대한 견습 사관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스페인 식민지 해안가를 약탈하고 보물을 실고 오는 스페인 상선들을 털어 먹기 위함이었다. 그 시절 흔한 정부 공인 해적선인 셈.
소함대의 기함인 센추리온 호의 데이비드 칩 중위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40대 초반의 튼튼한 스코틀랜드인인 그는 코가 길쭉하고 눈빛이 강렬했다. 그리고 도망자이기도 했다. 유산을 놓고 형과 벌이던 싸움, 뒤를 쫓는 채권자들, 적당한 신붗감을 구할 수 없게 만든 빚으로부터 그는 도망쳤다. 그러나 해군의 삼각모를 쓰고 영국 군함의 후갑판에 앉아 쌍안경을 들고 광대한 바다를 항해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자신감이 찰랑거렸다. 심이어 오만함이 살짝 엿보인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 p.35
이 낡은 동인도 무역선은 5월에 마침내 뎃퍼드 조선소에서 전함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군은 포의 개수로 전함을 분류하는데 28문의 포가 있는 웨이저 호는 가장 낮은 6등급이었다. 이 배의 이름은 일흔 네살의 해군대신인 찰스 웨이저 경을 기념해서 지어졌다. 잘 맞는 이름 같았다. 그들 모두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웨이저는 '노름' '내기'라는 뜻도 있었다.) - p.50
칩은 배로 들어오는 환자들을 지켜보았다. 너무 쇠약해서 들것에 실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겁에 질린 그들의 얼굴에는 누구나 내심 알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 있었다. 그들의 항해가 죽음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월터 신부는 이렇게 인정했다. "그들은 십중팔구 고통스러운 만성 질환으로 아무 쓸모없는 죽음을 맞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청춘의 활기와 힘을 바쳤던 사람들인데." - p.58
그러나 이들이 만난 것은 스페인 보물선이 아니라 태풍이었다. 악천후 속에서 낙오된 웨이저는 함대를 찾던 중 1714년 5월 14일 칠레 남부의 해안가에서 암초에 부딪쳐 좌초되었다. 항해 9개월 만의 일이었다. 생존자들은 인근의 무인도에 상륙했지만 황량한 섬에는 주민은 커녕 먹을 것이 거의 없었고 구조될 가능성 또한 희박했다. 이들은 엄연한 영국 수병이었지만 문제는 당시 영국 해군의 모호한 규정 덕분에 지휘 계통은 소속된 배가 있을 때에만 유지되며 만약 침몰이나 난파 등으로 배가 소멸하면 더 이상 해군법을 적용받는 군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웨이저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은 대부분 해군에서 잔뼈가 굵은 정예가 아니라 머릿수 맞출 요량으로 억지로 끌려나온 사회 낙오자들이었다. 심지어 군에서 운영하는 요양병원에서 동원된 60~70대의 노인들도 있었다. 항해 도중에 웨이저의 선장을 맡은 칩은 전투라면 몰라도 이런 상황에 가장 걸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하들의 신뢰를 얻는 노력 대신 그 시절 여느 귀족 장교들마냥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규율은 금방 무너졌고 성난 선원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칩은 섬에 버려졌다. 그 자리에서 살해되지 않은 것만도 운이 좋았다랄까. 침몰부터 탈출까지 수개월 동안 웨이저의 승무원들은 <오징어게임>마냥 그야말로 인간의 밑바닥까지 보여주게 된다. 이 책은 극한 상황에 직면한 인간들의 민낯을 다룬 드라마이다.
환자들은 비좁은 곳의 해먹에서 몸부림치며 크게 고통스러워했다. 고열로 식은땀을 흘리고 양동이나 자기 몸에 구토했다. 헛것을 보는 바람에 휘청거리다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발진티푸스라는 박테리아 폭탄이 출항하기도 전에 미리 배 안에 심어져 있다가 이제 함대 전체에서 터지고 있었다. "부하들은 점점 크게 앓으며 병약해졌다." 한 장교는 이렇게 적은 뒤 그 열병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라고 덧붙였다. - p.96
웨이저호가 3월 7일 르메르 해협을 통과하자마자 바이런은 많은 동료가 이제 해먹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피부는 처음에는 파랗게 변하더니 금새 석탄처럼 새까매졌다. 월터 신부는 "살에 곰팡이가 잔뜩 피었다."라고 묘사했다. 그들의 몸을 좀먹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점점 영역을 넓히면서 넓적다리로, 엉덩이로, 어깨로 번져갔다. 여기에는 "무릎, 발목, 발가락 간절의 지독한 통증"이 동반되었는데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인간이 이런 통증을 결코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바이런도 나중에 이 무시무시한 병에 걸려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격심한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병이 승조원들의 얼굴까지 침범하자 몇몇 사람의 얼굴이 상상속 괴물과 비슷해졌다. 빨갛게 충혈된 눈이 금방 튀어나올 것 같았다. 치아와 머리카락이 빠지고 입냄새는 부패의 악취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 p.131
이제 표류자가 된 승조원들은 몸을 후려치는 차가운 빗속에서 해변에 움츠리고 있었다. 칩이 계산해보니 원래 웨이저호에 타고 있던 성인남자와 소년 250명 중에 145명이 살아남은 것같았다. 모두 수척하고 허약하고 옷차림이 빈약해서 이미 난파를 당한 지 영원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같았다. 이제 열 일곱살이 된 바이런과 벌클리가 보였다. 해병들 다수가 목숨을 잃었지만 지휘관인 로버트 펨버턴은 살아남았다. 칩은 여기에 정확히 어디인지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유럽 배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릴 만큼 이 섬 가까이 지나가는 일도 없을 듯 했다. 그들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 p.171
총성과 하극상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은 칩이 거처에서 튀어나왔다.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손에는 이미 권총을 쥐고 있었다. 빗줄기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는 코전스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총을 쏜 범인이 코전스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그 악당 자식 어디 있어?" 그는 점점 불어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코전스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어떤 질문이나 절차도 없이 차가운 총구를 그의 왼쪽 빰에 댔다. 그러고는 자신이 나중에 표현한 것처럼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 p.229
바이런의 동료 중 일부는 너무 굶주린 나머지 시신을 먹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헛것을 보던 소년 한명이 아직 매장되지 않은 시신에서 살을 베어내자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그것을 먹지 못하게 했다. 비록 대다수의 사람이 글로 남긴 기록에서 식인이라는 단어를 언급조차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이런은 몇몇 사람이 죽은 동료의 시신을 잘라 먹기 시작했음을 인정했다. 바이런은 그것을 "최후의 비상수단"이라고 지칭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곧 이 섬을 떠나지 못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신성 모독의 행위에 무릎을 꿇을 터였다. - p.259
다음날 아침 벌클리 일행은 다시 항해에 나서면서 황량한 바다의 파도 속에서 작고 하얀 것이 출렁거리는 것을 언뜻 보았다. 커터 호의 돛이었다! 보트는 무사했고 열두 명의 사람도 멍한 상태로 물에 흠뻑 젖기는 했어도 살아 있었다. 벌클리는 이 기적적인 재회로 그들 모두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썼다. 커터 호는 스피드웰 호의 선미에 밧줄로 연결했고 그 배의 승조원들은 수병 1명을 제외하고 전원 스피드웰 호로 올라와서 잠을 청했다. 새벽 2시 밧줄이 끊어지면서 커터호는 바다로 떠내려겼다. 보트는 바위에 부딪혀 박살나면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동료 한명을 또 잃었을 뿐만 아니라 식량을 구하러 해안을 오갈 수단도 잃어버렸다. 게다가 이제 일흔 명이나 되는 사람이 밤낮으로 스피드웰 호에 빽빽이 타고 있어야 했다. "커다란 불안감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절망에 빠진 사람도 많다" 벌클리는 이렇게 썼다. - p.283
생존자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섬에서 한줌의 먹을 것을 놓고 동료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나만 살아남겠답시고 인간성까지 버리는 일은 없었다. 이들은 가능한 서로를 도왔고 폭군 노릇을 하는 선장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키면서도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몇몇은 선장과 운명을 함께 하는 쪽을 선택하기도 했다. 세상이 무너진다고 해서 <매드맥스>에 나오는 것마냥 다들 모히칸 머리를 하고 막장 찍는 무법천지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 그런 놈도 없지는 않겠지만.
더 놀라운 점은 이들이 탈출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 중에는 섬에 버려졌던 선장도 있었다. 하지만 섬에서 빠져나와서 온갖 고초를 이기고 문명 세계로 왔다고 해서 불행의 끝은 아니었다. 반란자들보다 두달이나 늦게 섬을 출발할 수 있었던 칩은 몇몇 부하들과 함께 스페인 식민지에 상륙했다가 붙들려서 기나긴 포로 생활을 보내야 했고 젠킨스의 귀전쟁이 끝난 1746년 3월에야 완전히 거지꼴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군사 재판이 열렸고 결과는 유야무야되었다. 어차피 전쟁은 끝났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사람들을 상대로 이제와서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영국 해군의 위신만 실추될 뿐이라는 것이 높으신 분들의 판단이었다.

웨이저 호가 난파된 장소. 사건을 기리기 위해 배의 이름을 따서 웨이저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면적은 완도보다 조금 큰 105㎢ 정도인데 워낙 황량한 섬이라서 지금도 사람 사는 동네는 아닌 모양. 2006년에는 당시 침몰한 웨이저 호의 잔해를 발견했다고 한다.
당초 250명이 출발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36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재앙을 맞이한 것은 웨이저호만이 아니었다. 웨이저 호가 속한 앤슨 제독의 함대는 6척의 군함과 2천여명에 달하는 승무원이 있었지만 폭풍우와 괴혈병, 말라리아로 기함인 1천톤급의 4등급 전열함 센추리온(HMS Centurion)을 제외하고 모든 배가 침몰하거나 버려야 했고 불과 500여명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단 한번의 항해로 80%가 몰살한 셈. 정작 전투로 죽은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고. 게다가 이런 비극은 바다에서 일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마젤란이 처음으로 세계 일주를 한 지 2세기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항해시대의 해군이 얼마나 명 짧은 직업인지 보여준다랄까. 그럼에도 앤슨 제독은 다 죽어가는 부하들을 이끌고 스페인 보물선을 상대로 승리했고 그야말로 역대급 대박을 쳤다. 소장 진급은 물론이고 우리 돈으로 280억원에 달하는 상금까지 챙겨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선원들도 각각 20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았다. 바로 이맛에 해군한담서.
칩도 말년이 썩 불운하지는 않았다. 이후 더 큰 군함의 선장을 맡았고 스페인 상선을 약탈하여 많은 상금을 받은 다음 해군에서 물러나 고향 땅에서 슬로우 라이프를 즐겼다고. 수습장교로서 마지막까지 칩과 함께 한 바이런 또한 승승장구하여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프랑스 함대를 상대로 싸웠으며 캐나다 뉴펄랜드 섬 총독과 해군 중장까지 지냈다. 웨이저 호의 포수이자 섬에서의 반란을 주도했던 존 버클리(John Bulkeley)는 자신들이 겪은 재난에 대한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메데따시~메데따시~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재난 스토리이지만 저자의 필력 덕분에 400여 페이지의 내용을 단숨에 읽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위키백과를 보니까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얘기가 있더라.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을, 영화에서 약빤 연기를 보여준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는다고. 대항해시대를 철저히 고증한 것으로 잘 알려진 영화가 2003년에 나온 러셀 크로우 주연의 <마스터 앤드 커맨더>인데 그 못지 않을 듯. 벌써부터 기대가.

번역 또한 전문 번역가 작품답게 전반적으로 매끄럽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이 있다면 p.35에서 선장인 데이비드 칩의 계급을 중위라고 번역했는데 엄밀히 말하여 "first lieutenant"는 육군에서는 중위지만 영국 해군에서는 '일등항해사'라는 뜻이며 대위에 해당한다. 육군의 대위인 "captain"이 해군의 대령인 것과 마찬가지. 원문을 보면 "센추리온 호의 데이비드 칩 중위"보다는 "센추리온 호의 일등 항해사인 데이비드 칩(David Cheap, the first lieutenant of the Centurion)"이 더 맞지 않을까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