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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데리안의 서재
  •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 크리스 밀러
  • 30,600원 (10%1,700)
  • 2025-12-26
  • : 1,260

"유럽에서 우리는 머슴이자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주인으로 가게 될 것이다."

(In Europe we were hangers-on and slaves, whereas we shall go to Asia as masters.)

☞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작가의 일기(Writer’s Diary), 1881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듯 4년째를 앞에 두고 있던 2024년 11월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가 떴다.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쿠르스크 전선에 뜬금없이 북한군이 등장했다는 소식이었다. 반년 전인 6월 19일 개전 이후 크렘린 궁전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던 푸틴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뒤 김정은과 러시아-북한 조약을 맺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로 약속을 얻어낸 결과였다. 실제로 북한은 여태껏 그러했던 것처럼 소수의 군사 고문단으로 생색내는 대신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냈다. 실전으로 단련된 우크라이나군 정예부대들을 상대로 막대한 사상자를 내면서도 결국 쿠르스크를 탈환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세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째서 푸틴이 벨라루스나 투르크메니스탄같은 구 소련 시절의 속국들이 아니라 굳이 북한의 손을 빌렸는지 복잡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우리로서는 두 나라의 밀월이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답답한 사실은 러시아의 행태를 보면서도 마치 남의 일인양 손놓고 태평스럽게 강건너 불구경하는 우리네 정치하는 양반들의 한결같은 모습이지만 말이다. 만약 요근래 중동에서 크게 사고 친 트럼프가 타이완더러 최신 무기 줄 테니 이란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고 했다면 당장 중국이 발끈했을 것이다.

쿠르스크 전역에서 북한군. 어떤 의미에서는 북한판 '나선정벌'이기도.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먼저 북한을 적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참전은 러시아의 용병일 뿐 아무런 국제적 명분이 없을 뿐더러, 엄연히 유엔 결의 위반임에도 케이블 TV에서 자칭 전문가들이 해묵은 북한 위협론으로 국민들을 겁주는 것 이외에 러시아에 경고는 커녕 변변히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 주소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북한이 7천 km나 떨어진 이역만리의 쿠르스크까지 대부대를 파병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기 때문이다. 쿠르스크가 어디에 붙은 동네인지조차 몰랐을 북한군 병사들은 푸틴이 제공한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그곳까지 도착했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러시아는 정말 큰 나라이다.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고 서쪽의 발트해에서 극동의 베링해협까지 동서 길이는 1만km가 넘는다. 비록 넓은 영토 대부분은 사람 살기에 너무 춥고 척박하여 거의 텅 빈 공간이기는 해도 말이다. 손바닥만한 땅에 수천만명의 사람이 부대끼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와는 천양지차랄까.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러시아가 훨씬 더 큰 나라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 원래 러시아의 뿌리는 13세기에 세워진 모스크바 공국이다. 키에프 루스국의 제후국 중 하나였던 모스크바 공국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만 해도 듣보잡의 약소국이었지만 17세기에 오면서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키며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표트르 대제가 제국을 선언했을 때 이미 시베리아를 발밑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베링해를 넘어서 북미 대륙으로 진격했다. 1867년에 단돈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넘겼다는 알래스카 조약은 유명한 사건이지만 알래스카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심지어 하와이까지도 러시아 땅이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명청 시대 해금령을 선언했던 중국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본질을 해양국가가 아니라 대륙국가로 규정했고 바다 너머에서 힘에 부치는 모험을 벌이기보다 시베리아 경영과 서쪽과의 투쟁에 힘을 쏟기로 했다. 당시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무조건 크면 클수록 알흠답다"라고 여기는 오늘날 러시아인들로서는 그 시절 조상님들의 근성이 부족하다 어쩌구 할런지 모르지만.

작년 말 너머북스에서 나온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는 러시아 제국의 창시자였던 표트르 대제가 처음 동쪽으로 눈을 돌린 이래 푸틴에 이르기까지 3세기 반에 걸친 동방을 향한 러시아 불곰의 야심차고 파란만장했던 동방 모험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인 크리스 밀러(Chris Miller) 교수는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외교 및 경제 전문가로서 2023년에는 <칩워>라는 책을 출간하여 국내에서도 선풍을 끌었다는데 읽어보지는.

이 학자 풍의 말라깽이 아재가 저자. 대표 저서인 <칩워>는 삼성전자가 있는 우리와도 밀접한 주제다보니 한국에서도 엄청 팔렸다고.

이 책은 1697년 러시아 제국의 동쪽 끝인 캄차카 반도에서 러시아 탐험대가 우연히 정체불명의 남자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은 엉뚱하게도 그리스인이라고 여겼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인이었다. '덴베에'라는 이름의 그는 오사카의 무역상으로 에도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고 머나먼 모스크바까지 압송되어 표트르 대제를 알현하게 된다. 모스크바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일본인이자 러시아와 극동의 섬나라 일본의 첫 접촉이기도 했다. 마치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랄까.

표트르는 유렁 왕실들 및 기독교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과 외교를 수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적 업무를 잠시 뒤로 미루어 일본인 표류민을 만날 시간을 냈다. 1702년 1월 8일 표트르는 자신의 별장에서 덴베에를 접견했다. 별장 자체는 표트르 대제의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서구의 건축 전통을 참조했을 뿐만 아니라 가로등같은 최신 유럽 기술을 접목했고 표트르 개인의 전쟁 게임을 위해 특별히 지어진 작은 성채도 있었다. 유럽 기술에 대한 매료와 전쟁에 대한 사랑이라는 차르의 두 가지 특징이 묻어나는 거처에서 표트르가 덴베에를 맞이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그리고 덴베에는 흔히 간과되던 표트르 통치의 세번째 측면, 즉 머나먼 동방 땅에 대한 관심을 의미했다. - p.21


1724년 12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표트르는 평생 질시하며 동경하던 서구가 아닌 아시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한 제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북극해를 통해 중국과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방안을 깊이 고려해왔습니다." -p.22


두 사람의 만남이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건간에 러시아는 영토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숨기지 않으면서 동쪽으로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미국 개척민들이 마차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신생 미국의 영토를 넓혀나갈 때 러시아인들 또한 베링해협을 넘어서 알래스카를 지나 캘리포니아로 행진했다. 북미 대륙은 러시아와 미국, 영국령 캐나다로 삼분될 수도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세 나라의 운명은 지금과는 완전히 바뀌어졌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먼저 꼬리를 내린 쪽은 러시아였다. 러시아의 심장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차르는 스스로를 아시아에서 징기스칸의 후예가 아니라 유럽 군주의 일원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1867년 미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와 러시아 주미 대사 에두아르드 데 스토클이 알래스카 판매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차르가 알래스카를 헐값에 넘겼다며 분개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가 개척한 영토라기보다 원주민 땅에 깃대만 꽂아놓고 뻔뻔하게 주인 행세를 하면서 멋대로 돈 받고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러시아로서는 어차피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동방 정책은 오락가락하고 원칙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의 땅에 대한 욕심을 순순히 접지도 않았다. 때로는 황금알을 얻기도 했고 뼈저린 댓가를 치르기도 했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에 직면한 청조를 압박하여 연해주를 뜯어간 러시아는 만주까지 탐내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한방 먹고 체제가 붕괴될 뻔했다. 볼셰비키들은 중국에서 세계 혁명의 기회를 노렸지만 장제스에게 쓰라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하지만 1939년 가을 노몬한에서는 숙적 일본과의 리매치전에서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어지간히 쓴맛을 봤는지 일본은 두번 다시 시베리아를 넘보지 못했다. 스탈린의 관심사는 항상 동쪽보다 서쪽이었지만 일본이 패망했을 때 동쪽에서 자기 몫을 챙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우리의 분단이었다. 저자는 500여 페이지에 걸쳐 성공과 실패의 파란만장했던 러시아 동진 350년사를 흥미롭게 다룬다.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러시아 선박은 레자노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알래스카로 가는 세계 일주 항해 중에 타고 있던 나데즈다호와 네바호였다. 1802년 6월 두 배는 하와이 해안에 정박했고 이 섬들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식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러시아 방문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곳에서는 돼지고기, 빵나무 열매, 바나나, 코코넛, 타로 토란, 얌, 바타타, 소금, 나무, 물, 그리고 배에 비축하기에 특히 좋은 여러가지 물품을 풍부하게 구할 수 있다." - p.83


포트 로스와 알래스카 정착지는 몇 십년 동안 더 유지되었지만 사실상 거의 무시당했다. 러시아인들은 왜 그것들을 신경써야 하는지 정당화하려고 애썼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더 이상 북아메리카에서 러시아의 공간을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1830년대 후반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이사들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해달이 거의 멸종했다. 로스 정착지는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 1841년 회사는 이 요새를 3만 달러에 매각했다. - p.101


무라비요프는 "잉글랜드인들이 그 금에 대해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사할린과 아무르 강 하구를 차지하고 말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염려했던 이유는 자문관인 발라소글로가 아무르강 삼각주와 북태평양 연안이 이집트에게 나일강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것만큼이나 러시아의 미래에 핵심적인 지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무라비요프는 이 지역이 유럽 제국들의 팽창에 알맞은 땅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문제는 어느 제국이 그 지역을 차지하는가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 아무르강 하구에 영국 요새 대신 러시아 요새가 서 있기만 한다면 러시아의 지배는 영원히 보장될 것이다." - p.127


1860년대와 1870년대에 러시아 지도자들의 주된 관심은 극동 지역이 러시아의 나머지 부분에 부담을 주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국경 너머의 지역들 - 중국 만주와 청의 보호를 받지만 독립국인 조선 -은 러시아에게 더욱더 관심 밖의 존재였다. 러시아는 1880년대 중반까지 조선과 거의 무역이 없었다. 1880년대에 영국이 조선에 접근하기 시작했을 때 러시아 관리들은 '불간섭 정책'을 주장했다. 러시아 해군 제독들은 당시에는 조선 해안에 항구가 생긴다 해도 러시아에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 p.219


1927년 4월 스탈린이 평가했듯 국민당 우파와 우한의 국민당 좌파, 그리고 중국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동맹이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가 다수를 점하고 있고 그들 우파가 우리의 말을 듣고 있는데 왜 우파를 쫓아내겠는가?" 국민당은 "철저히 이용되고 레몬처럼 즙이 짜인 뒤에 버려져야 한다." - p.309


스탈린이 아시아에서 기회를 포착한 것은 군사적 균형에 대한 냉철한 계산이자 팽창에 대한 열망의 결과였다. 차르 니콜라이의 제국은 복원되었다. 몰로토프는 한때 알래스카까지 꿈꾸었지만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알래스카가 여전히 크램린의 손이 닿지 않는다손쳐도 얻은 것은 많았다. 세계 지도가 새로 그려지는 가운데 크렘린은 소련의 힘을 아시아에서 확대할 새로운 기회를 감지했고 영토 확장의 가능성도 함께 보았다. "외무장관으로서 나의 임무는 우리 조국의 국경을 확장하는 것이다."라고 몰로토프는 은퇴 후에 자랑스럽게 회고했다. - p.374


두 나라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흐루쇼프는 아주 유치하다"라고 마오쩌둥은 선언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국주의자들에게 쉽게 속는다." 한편 소련 지도자들은 미국과의 대립 뿐만 아니라 버마, 인도네시아, 인도를 포함해 모스크바가 구애하고 있는 여러 탈식민지 국가들과의 갈등에 대해서도 베이징을 비난했다. 내부 회의에서 소련 지도자들은 중국의 도발이 사회주의 진영 내에 불필요한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p.419


남한이 투자 자금의 주요 공급처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계속 있었지만 실제로 실현된 것은 거의 없었다. 1992년 옐친이 선언했듯 두 나라는 "이제 서로를 갈라놓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두 나라를 결속시키는 요소 또한 거의 없었다. 옐친은 서울과 우호조약을 체결하고 1983년 소련군이 격추한 대한항공 007 여객기 사건을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가 남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과 거리를 두었음에도 평양의 핵 프로그램은 서울로 하여금 안보의 주요 제공국인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었다. 이에 비해 러시아가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 p.500


러시아 통치자들이 왜 거듭하여 아시아에서 기회를 찾으려고 했을까? 그 이유로는 중국과 일본의 거대한 시장, 시베리아의 풍부한 자원에 대한 접근, 태평양으로의 출구, 자주 그렇게 여겨져 왔듯이 지정학적인 팽창과 영토 확장을 위한 공간,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오늘날 카라가노프가 러시아의 아시아 전환을 설명하며 말했듯이 "유럽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라시아적 출구"를 찾으려는 희망 등을 들 수 있다. 수 세기 동안 러시아의 아시아 국경은 온갖 거창한 계획을 펼칠 수 있는 열린 문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 p.518



벌써 30여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예전에 불곰사업이라고 러시아제 T-80 전차와 BMP-3 장갑차가 국내에 들어와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이 기억난다. 노태우 시절 북방 외교의 일환으로 구소련에 거액의 돈을 빌려줬다가 소련이 망하면서 못 받게 되자 그 대신 일종의 현물 상환으로 무기를 받아낸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를 떠나서 북한조차 언감생심이었던 러시아제 최신 무기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것에 호기심 어린 시선과 더불어 처음으로 미국일변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우리에게는 놀라운 도약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밀덕들에게는 말이다. 소위 '러빠'들이 PC통신을 중심으로 한창 양성되기도. 우리 사회에서 러시아 붐이 불면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러시아로 유학갔다. 그 시절 러시아는 기회의 땅이었다. 특히 통일이 된다면 북한을 거쳐서 유럽까지 열차를 타고 횡단하는 시대가 열릴 거라는 장밋빛 환상을 품기도 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러시아를 얼마나 아는가. 얼마 전에 JTBC 비정상회담에도 출연한 바 있는 러시아인이 쓴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라는 책을 읽었다. 여기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러시아란 금발 미녀와 보드카, 푸틴이 곰을 붙잡고 헤드락을 거는 나라"라고 하더라. 우리의 대외 무역에서 러시아는 10위권에도 속하지 못한다. 별로 중요한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폭발과 함께 양국의 경제 협력은 사실상 단절되었다. 그 와중에 푸틴이 우리 대신 북한을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한 것은 단순히 코드 맞는 독재자들끼리의 야합만이 아니라 30년 북방 외교의 실패이자 여전히 좁은 한반도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만 보는 우리 외교의 한계를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21년에 씌여졌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푸틴과 김정은의 결탁에 대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지적처럼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서쪽에 집중하다가도 기회가 될 때마다 동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유럽에서 우리는 2류였지만 아시아에는 우리가 1류가 될 것이다."라는 게 러시아인들의 오랜 갈망이라고 강조한다. 설령 기대만큼 큰 재미를 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과 극한 갈등을 빚고 있는 푸틴이 서쪽 대신 동쪽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겠다고 나서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미국과 중국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우리로서는 러시아가 언제 중국, 북한과 손을 잡고 이빨을 들이댈지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여전히 멀고도 먼 나라 러시아의 동방 야심을 경고한다. 한마디로 금발 미녀에만 눈이 돌아가서 안 된다는 것. '올초 글항아리에서 나온 러시아 제국주의 역사를 다룬 <로스트 킹덤>과 함께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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