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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데리안의 서재
  • 콜디츠
  • 벤 매킨타이어
  • 28,800원 (10%1,600)
  • 2025-09-20
  • : 590

인터넷에 병맛 이탈리아군 유머가 있다. 한 영국군 장교가 이탈리아군에게 포로가 된 뒤 아주 거한 대접을 받자 최후의 만찬인가 했는데 도리어 실수로 병사 식단을 줬다면서 사과하더라는 것. 그럼 이탈리아군 기준에서 장교다운 대접은 어느 정도라는 건지. 물론 일본 네티즌들이 지어낸 황당무계한 뇌내 망상일 뿐이다. 제아무리 물렁하기로 이름난 이탈리아라도 상대가 무슨 이용 가치가 있어서 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한낱 포로 따위에게 만찬을 베풀 이유도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이탈리아는 그렇게 먹을 것이 넘쳐나지 않았다.


<걸즈앤판처>에서 이탈리아를 모티브로 한 안치오 고교의 먹방 소녀들. 간식비 아껴서 전차를 사는 동네인지라. 일본을 모티브로 한 치하탄 고교에서 반찬으로 단무지와 짠지만 나와도 진수성찬 타령하는 것과는 대조적. 일본인들의 이탈리아군 이미지를 보여주는 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 생활은 천차만별이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포로가 되는 것이 군인으로서 불명예스럽다고는 해도 전장터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기보다 차라리 전쟁 끝날 때까지 포로 수용소에 있는 쪽이 훨씬 안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한 병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우선 백기들고 항복한다고 해서 적군이 살려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퓨리>에서도 잔뜩 격앙된 미군 병사들이 살려달라는 독일군 포로를 즉결처형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통계에서는 한창 싸우다가 항복했을 때 그 자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대략 절반 정도였다나.

게다가 무사히 포로가 되어서 포로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해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1929년 7월 27일 제3차 제네바 협정은 인도주의에 따라 전쟁 포로에 대한 고문과 학대를 금지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한쪽이 가맹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포로들을 고문, 학살했다는 증거가 빼박 드러나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푸틴은 그래서 어쩌라고 시전만 하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나마 그런대로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려고 노력한 쪽은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영국이었다. <미친 포로 원정대>라는 책에서는 동아프리카에서 영국군 포로가 된 몇몇 이탈리아 군인들은 수용소에서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는지 저 너머 보이는 뒷산에 오르기로 결심했고(무려 백두산 두 배의 높이였다!) 결국 등반에 성공한 뒤 달아나는 대신 제발로 돌아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독일 또한 서방측 포로에게는 비교적 관대했다. 최악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이 동부전선이나 일본군에게 붙잡힌 포로들이었을 것이다. 제네바 협정? 그거 먹는 거임? 우걱우걱.

브래드와 이혼 전의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을 맡은 영화 <언브로컨> 베를린 올림픽 출전 선수이자 B-24 폭격기 조종사였던 루이 잠페리니의 실화를 배경으로 했다. 그 시절 일본군 포로 수용소가 어떤 지옥인지 만천하에 보여준 덕분에 일본 극우들이 난리였다고.


어떤 사람들은 적과 싸워야 하는 군인으로서 그 적에게 붙들렸다는 사실 자체가 자존심 상하고 불명예스러우며 이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위도식하기보다 차라리 죽는 쪽이 더 낫다고 여기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베르뎅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던 드골은 다섯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그 터무니없는 키 때문에 붙잡혔고, 북아프리카 전역 초반 로멜의 포로가 되었던 영국군의 오코너 장군은 세번의 시도 끝에 결국 연합군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영국 제8군단을 지휘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고 마켓가든 작전을 지원했다. 우리같은 소심한 사람들은 밥만 잘 먹여주고 대우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면 굳이 탈출하겠답시고 개고생하느니 그냥 수용소 한쪽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낼텐데 말이다.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열린 책들에서 2차대전 덕후라면 주목할 신작 도서가 나왔다. <콜디츠>는 나치 시절 독일 국방군이 운영한 수많은 전쟁 포로 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곳이었던 콜디츠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인 벤 메킨타이어(Ben Macintyre)는 영국 출신 논픽션 작가이자 더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책의 배경인 콜디츠 성(Colditz Castle)은 독일 라이프치히 남동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르네상스 시절의 성으로 11세기에 처음 건설되었고 보수와 재건이 반복되어 1694년 폴란드 군주이자 작센 선제후였던 아우구스투스 2세에 의해 대대적으로 증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양반은 강인왕에 색슨족의 헤라클레스, 심지어 강철 주먹(Iron-Hand)이라는 중2병스러운 별명으로 불릴 만큼 힘이 장사였다고. 게다가 그쪽 힘도 장난 아니었는지 일설에는 자식이 380명에 달했다고 한다. 정력왕인가! 이렇게 많은 자식들에게 자기방 하나씩 준답시고 콜디츠 성에 방을 700개나 지었다고 하니 아주 뻥은 아닌 모양.

이렇게 보면 성이라기보다는 호그와트 기숙학교같은 느낌이랄지. 하긴 애들 수백명을 한 곳에 모아두려면 기강 빡시게 잡아야.


1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성이지만 20세기에 와서는 죽음의 공간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정신병자들을 감금하여 900여명 이상이 영양실조로 죽었으며 나치 집권 후에는 정치범 수용소로 활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플라그(Oflag) IV-C라는 이름의 장교 전용 포로 수용소로 바뀌었다. 특히 반항적이고 탈출 가능성이 높거나 비중 있는 사람들을 모아두었다. 그 중에는 영국 공군의 전설적인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더글라스 베이더 대령을 비롯하여 폴란드 국내군 사령관으로 바르샤바 봉기를 지휘한 보르-코모로브스키(Tadeusz Bór-Komorowski) 장군, 영국 SAS 사령관 데이비드 스털링 중령 등 그야말로 쟁쟁한 거물들도 있었다. 나중에 영화 배우가 되는 데스먼드 루엘린은 콜디츠의 경험을 제임스 본드 영화에 써먹었다고. 지도자급을 모아둔 이터성 수용소에 비할 수는 없어도 나름 VIP용 수용소였던 셈. 언덕 위에 있어서 외부와 고립된데다 성벽이 높아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외부로 나가는 출입구는 두 개 뿐이며 독일군이 24시간 내내 철통같이 감시했다. 하지만 완벽한 감옥이란 없는 법이라고 전쟁 동안 36명이 이곳을 탈출하여 독일 포로수용소 중에서는 의외로 성공률이 꽤 높은 축에 속했다고 한다.

포로 수용소라고 해도 저렇게 일광욕과 스포츠까지 즐길 만큼 그런대로 자유로웠다고 한다. 이정도면 굳이 탈출 안해도 되는거 아님?


이 책은 탈출하려는 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독일군의 두뇌 싸움을 묘사하고 있다. 콜디츠에 수용된 포로들은 평범한 졸병이 아니라 전쟁에 이골이 난 베테랑 장교들이었고 대개 한가닥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여느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하여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1천여 명이 넘는 수용자 중에 불과 36명만이 빠져나갔다고 하지만 거의 성공할 뻔한 사람들도 있었다. 독일군 또한 실수를 반복하는 대신 부지런히 빈틈을 막았다. 보안은 나날이 강화되고 빠져나가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들의 대결은 마치 실베스타 스텔론 주연의 탈출 영화인<이스케이프 플랜>을 연상케 한달까. 물론 대부분은 무모한 도박에 목숨을 걸기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지내는 쪽을 선택했지만 말이다.

1940년 11월 10일 오후 팻 리드 대위는 절벽 위의 성을 올려다 보면서 찬탄과 불안이 혼합된 감정을 느꼈다. 그 성을 지은 사람들의 의도와 딱 맞아떨어지는 감정이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우리의 감옥이 될 곳이 머리 위로 솟아 있는 것을 보았다. 아름답고 고요하고 장엄하면서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만큼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위기. 아무리 용감한 사람도 주춤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 p.27


콜디츠 외곽의 경비가 워낙 엄중하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빠져나가는 가장 논리적인 길은 지하에 있었다. 굴을 파는 데에는 인내심, 계획, 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콜디츠에는 이 세가지가 아주 풍부했다. 1941년 봄 무렵, 영국인, 폴란드인, 프랑스인들은 각각 수용소의 서로 다른 구역에서 독자적으로 굴을 파고 있었다. 서로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누가 공개적으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콜디츠 지하에서 비밀스러운 경쟁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 p.56


에거스는 독일군 장교 중에서 가장 만만찮은 사람이었다. 포로들이 성을 빠져나갈 방법들을 시험하기 훨씬 전부터 그는 그들을 단속할 방법을 강구했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이고 극도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영국 포로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불신했다. 특히 팻 리드는 그를 <여우같고 유능하고 좀 지나치게 유들유들>하다고 생각했다. - p.67


콜디츠에서는 장교 네명이 사라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다음날 밤에 극장을 통해서 장교 두 명이 더 탈출한 것이다. 에거스는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속으로는 분노했다. 점잔 빼는 영국인과 속을 알 수 없는 네덜란드인은 심지어 탈주자의 신원을 위장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실력과 그 신비로운 도피 구멍에 대해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에거스는 펄펄 뛰었다. - p.144


니브의 <홈런>으로부터 5개월 동안 콜디츠 포로들은 스물 두번의 탈출 시도를 했다. 개중에는 국제적인 협력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었다. 그 중에 성공 사례는 한번 뿐이었다. 벨기에 장교가 군 병원으로 이송된 뒤 탈출하여 스페인 알헤시라스 앞바다에 정박한 영국 선박까지 헤엄쳐 가서 화물칸에 숨어 밀항한 사례. 다른 탈출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네덜란드인 두 명은 노동자로 변장하고 걸어 나가려다 붙잡혔고 프랑스인 장교 한 명은 다락방에서 굴을 파면서 나온 잔해를 운반하는 수레 속에서 반쯤 질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네덜란드인 한 명은 사냥터의 나뭇잎 더미 아래에 숨어 있다가 들켰다. - p.178


10월 18일 히틀러는 특공대 명령을 발표했다. 연합국의 모든 특공대 포로는 제복을 입었건 입지 않았건 설사 항복하더라도 재판 없이 즉결 처형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내용이었다. 이 명령에는 처형 명령을 실행하지 않는 독일군 장교도 처벌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포함되었다. 나치가 국제법을 존중하는 시늉을 하던 마지막 흔적이 증발해 사라졌다. - p.224


10월 18일 히틀러는 특공대 명령을 발표했다. 연합국의 모든 특공대 포로는 제복을 입었건 입지 않았건 설사 항복하더라도 재판 없이 즉결 처형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내용이었다. 이 명령에는 처형 명령을 실행하지 않는 독일군 장교도 처벌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포함되었다. 나치가 국제법을 존중하는 시늉을 하던 마지막 흔적이 증발해 사라졌다. - p.224


외벽까지 아직 3미터쯤 남았을 때 싱클레어가 휘청거리다가 무릎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철망 뒤에서 사람들이 놀란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가 가을 낙엽을 향해 앞으로 무너졌다. 총알 하나가 그의 오른쪽 팔꿈치를 맞고 튀어나와 곧바로 심장에 박혔다. - p. 359


마을 호텔에 미군 임시 지휘 본부가 차려졌다. 콜디츠 성의 공식적인 항복은 호텔 살롱에서 이루어졌다. 프라비트가 앞으로 나서서 경례하고 칼집에 넣은 기병도와 권총을 제273보병연대의 레오 쇼너시 대령에게 넘겼다. 그러가 나서 코만단트와 그의 휘하 장교 열 여섯 명은 야유를 보내며 밀쳐 대는 미군들 사이를 통과해서 감옥으로 갔다. 프라비트의 한쪽 견장이 뜯어졌다. 독방 처분을 받은 수많은 포로가 갇혔던 간방에 감금된 에거스는 이제 자신의 세계가 완전히 뒤집혔다는 생각을 했다. - p.431


저자는 460여 페이지의 본문을 통해 1940년부터 5년 동안 콜디츠의 수용소에서 벌어진 온갖 탈출극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치밀한 계획과 준비는 물론이고 그야말로 로또급의 행운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성에서 빠져나간다고 전부가 아니라 독일을 벗어나서 중립국에 도착해야 비로소 기나긴 여정은 끝날 수 있었다. 변변한 먹을 것도 없이 감시와 추격을 피하여 수백km를 이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은 첫번째 관문에서 실패했다. 어떤 사람은 골인점을 바로 눈앞에 두고 실패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성공한 극소수가 있다고 하니 인간의 의지와 인내심이란 실로 끝이 없는 모양이다.

영국 공군 파일럿으로 콜디츠에서 가장 독창적인 탈출 시도자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긴 도미닉 브루스 중위. 무려 17번을 시도했다고. 깨어 있는 동안 오로지 탈출만 생각했던 콜디츠 10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해방시킨 것은 탈출이 아니라 미군이었다.


이들의 무모한 도전은 그저 수용소의 무료함에서 벗어나거나 영웅심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악명높은 아우슈비츠나 일본 수용소에 비할 바는 아니라도 수용소 환경은 매우 열악했고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게다가 언제 나치가 돌변하여 처형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떨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수년이나 좁은 공간에 감금당한 채 자유를 제약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 중에는 견디다 못해 정신이 무너진 사람도 있었다. 콜디츠에서 가장 화려한 탈출 이력을 가졌던 영국군의 마이클 싱클레어 중위는 마지막 탈출이 실패하자 사실상 자살을 선택했다. 포로들의 기나긴 역경은 나치 패망 보름 전인 1945년 4월 16일 미군이 콜디츠를 점령하면서 비로소 끝났다.

저자의 뛰어난 필력 덕분에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한번 책을 펼치니까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어서 주말 내내 단숨에 읽어버렸다. 올해 읽은 가장 흥미진진한 책 중의 하나라고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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