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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데리안의 서재
  •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일란 파페
  • 29,700원 (10%1,650)
  • 2024-11-19
  • : 3,005

벌써 1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모든 시선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프리고진의 반란에 쏠려 있었던 2023년 10월 7일 새벽 이번에는 남쪽으로 1,500km 떨어진 영원한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일대에 수천발의 로켓 공격과 함께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중 하나인 하마스 소속 게릴라 수천여명이 가자 지구의 장벽을 돌파하고 이스라엘 세력권으로 진입하면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간의 충돌이야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기껏해야 수발에서 수십발 정도 간헐적으로 로켓을 발사하고 이스라엘이 맞대응했던 것이 이번에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전면전 수준의 기습 공격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을 정말로 충격에 빠뜨린 것은 가자 지구 인근의 레임 키부츠(유태인 정착촌)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서 패러 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온 기습자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모습이었다. 서방 미디어들은 하마스의 광기어린 폭력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서 이들의 '악의 축'이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왜 이들의 탄압에 나서는지 정당성을 부여했다.

패러 글라이더를 타고 행사장 머리 위에서 강하하는 하마스 대원들. 국적과 성별을 따지지 않고 비무장한 민간인을 상대로 조준 사격과 무차별 난사를 하고 심지어 일부 포로들을 참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극도로 불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이스라엘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들 세상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이 사건은 푸틴이라는 독재자가 장기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만만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벌인 침략전쟁과 달랐고, 80년 전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의 패권을 차지할 요량으로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한 것과도 달랐으며, 영웅심리에 눈이 먼 사우디 출신 부자집 도련님이 막연한 반미 감정에 편승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끌 요량으로 애꿎은 민간인들이 탄 비행기들을 납치한 뒤 미국 한복판에 닥돌시킨 911테러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지배자 노릇을 하면서 저지른 폭력과 만행은 하마스의 이번 테러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 격이었다. 미국 서부 개척 시절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터전을 난폭하게 빼앗고 학살을 저질러 원주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것처럼 말이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건국이 처음 선언되었을 때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서로 다 가지겠다면서 힘으로 승부를 겨루기로 했다. 유리한 쪽은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유대인들이 일치단결한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분열되어 주변 아랍국들에게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끼어든 아랍 연합군은 자기들 몫만 챙기고 냉큼 물러났다. 팔레스타인 내 아랍인 지역의 60%는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나머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아랍국들이 전리품마냥 나누어 가졌다. 유엔은 자신들의 권위를 대놓고 무시한 이스라엘과 아랍국을 혼내는 대신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을 쫓아내기는커녕, 자신들의 고향도 지키지 못한 셈이었다. 이스라엘만큼이나 아랍국들의 통치 역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혹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독립 움직임은 철저한 탄압을 받았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났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은 이번 사태를 보듯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과연 이 동네에 폭력의 악순환이 끝나는 날이 올까 싶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은 남아공의 악명높은 아파르트 헤이트조차 무색할 만큼 잔혹하다. 팔레스타인 극우 지도자들 역시 청년들을 부추겨 자살 특공에 내몰면서 양측의 희생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물론 평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3년 미국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팔레스타인 지도자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오슬로 협정을 맺고 부분적이나마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함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비록 칼자루를 쥔 이스라엘에 훨씬 유리한 내용이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일방적인 복종만 강요했던 이전에 비해 한발짝 나아간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몇몇 지도자들의 밀실 야합으로 증오를 내려놓기에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는 사실이었다. 이 점이 남아공과의 근본적인 차이였다. 양측은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이상 어중간한 타협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라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교 근본주의자에게 암살당했고 모처럼 열린 평화의 길 또한 양측 강경파들에 의해 흐지부지되었다. 애초에 대를 이어가면서 죽기 살기로 싸운 사람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모두 다 없었던 일인양 잊고 화해하고 살자는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우리만 해도 역대 정권의 대화 노력이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북한을 도저히 공존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하마스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초토화된 가자지구. 함무라비 법전의 유명한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는 것이 이 동네 방식이라.

남들이야 지금이라도 이스라엘이 폭력을 멈추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냉큼 물러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거 아니냐고 쉽게 말할지 몰라도 애초에 왜 싸우게 되었으며 서로의 증오가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관계는 과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배나 일본이 우리를 병합했던 것과는 성격이 다르며, 탐욕에 눈이 먼 이스라엘이 평화로운 팔레스타인을 정복했다는 식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 와서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이며, '굴러온 돌'인 유대인들이 그곳을 자기네 땅이라 우기며 점유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이치를 따져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요한 점은 1948년에 팔레스타인은 졌고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사실이다. 냉엄한 우리네 현실에서 나머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만약 그 때 팔레스타인이 승리했다면 오늘날 양쪽의 처지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남의 힘을 빌리는 대신 하나로 뭉쳐서 자신들의 힘으로 싸웠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나라 없는 신세가 되어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것이야말로 나라를 잃은 적이 있는 우리가 진정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지난 11월에 교유서가에서 나온 신작도서인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 이스라엘의 탄생과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이 끝없는 싸움이 처음 시작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어떤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며 그 증오의 뿌리가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탐욕에 있었음을 고발하는 책이다. 저자인 일란 파페(pdfIlan Pappe)교수는 놀랍게도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미국인, 또는 제3국 사람이 아니라 가해자들과 똑같은 이스라엘 유대인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부모님은 1930년대 나치 박해를 피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넘어온 독일계 유대인이라고. 파페 교수는 차할(Tzahal,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복무했고 제4차 중동전쟁 당시 골란 고원에서 싸웠다고 한다. 이스라엘 하이파 정치대학 교수로 지냈지만 팔레스타인을 편들고 자국의 만행을 비난하자 극우 세력들의 살해 위협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했다. 어느 사회이건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법이다.

저자인 일란 파페 교수. 그는 이스라엘에서 보기 드물게 유대인이 피해자가 아니며 나치 못지 않게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을 고발하여 조국에서 쫓겨나야 했다. 이스라엘이 아파르트 헤이트 시절의 남아공 못지 않게 폐쇄적이며 과거사 반성이 없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알려진 이스라엘 건국 신화란 제1차 중동전쟁 당시 수적 열세와 변변한 무기도 없이 전투기와 탱크를 앞세운 압도적인 아랍 연합군을 격파하고 2천년 만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마치 6.25 당시 북한군의 T-34 전차에 맨주먹으로 맞섰던 우리 국군처럼 말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두뇌와 교육 열기로 사막을 옥토로 바꾸고 가난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는 것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우리의 믿음이다. 시중에는 소위 '하브루타'라고 부르는 유대인식 자녀 교육이 아이 가진 부모들의 필독서로 통한다. 저자는 이 모든 신화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어떤 전쟁범죄를 저질렀는지 폭로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네 신세계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병균을 뿌리 뽑는 셈이었다. 집단 학살과 약탈, 강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비교한다면 대규모 가스 처형실이 없었다는 것만 달랐다.

1936년 일어난 봉기는 결연한 대중 반란의 형태로 터져나왔고 결국 영국 정부는 인도보다도 더 많은 군대를 팔레스타인에 주둔시킬 수밖에 없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망명길에 올랐고 위임 통치 군대에 맞서 게릴라전을 계속하던 준군수 부대들은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반란에 관여한 많은 마을 사람이 체포되거나 부상을 입거나 살해되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와 생존력 있는 전투 조직이 대부분 자취를 감추자 1947년 유대 군대가 팔레스타인 농촌 지역에 수월하게 진출했다. - p.52


1917년 11월 유엔에 제안된 최종 지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팔레스타인은 세 부분으로 분할될 예정이었다. 전체 면적의 42퍼센트에서는 팔레스타인 81만8천명이 유대인 1만명을 포함하는 국가를 갖는 반면,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는 전체 면적의 56퍼센트에 육박했다. 이 국가는 49만9천명의 유대인과 43만 8천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공유하기로 되어 있었다. 세번째 부분은 예루살렘 시 주변의 작은 고립지인데 국제 사회가 관리하고 20만명의 인구는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 동수로 구성할 예정이었다. - p.83


기관총으로 무장한 유대인들이 커피하우스에 총을 난사하는 동안 스턴갱 대원들은 근처를 지나던 버스를 세우고 닥치는대로 총을 쏘았다. 스턴갱이 팔레스타인 농촌에서 처음 벌인 작전이었다. 공격에 앞서 스턴갱은 활동가들에게 팸플릿을 배포했다. "아랍인 동네를 파괴하고 아랍 마을을 응징하라." - p.134


다시 말해 1948년 3월 몇주를 전쟁 전체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묘사하는 이가엘 야딘의 설명을 듣다보면 우리는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공동체가 전혀 절멸당할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종족 청소 계획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장애물에 부딪쳤을 뿐이었다. 상대적인 무기 부족과 아랍 국가로 지정된 지역에 고립된 유대인 이주 식민지 등이 이런 난관이었다. - p.161


장티푸스 전염병과 집중 포격으로 사기가 약해진 주민들은 확성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항복하든지 자살하라. 최후의 한 사람까지 죽일 테니까." 프랑스의 유엔 옵서버인 프티트 중위는 도시가 유대인의 손에 넘어간 뒤 군대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약탈을 자행했다고 보고했다. 가구, 옷가기, 기타 유대인 신규 이민자들이 쓸만한 물건이나 없애버리면 난민들이 돌아올 생각을 포기할 물건을 모조리 약탈했다. - p. 186


아랍 지도자들 가운데 초기 단계인 1948년 초에 팔레스타인 사람들 앞에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가피한 군사 개입을 최대한 질질 끌면서 연기했고 일찌감치 개입을 마무리하게 되자 무척 흡족해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패배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국의 군대가 우월한 유대 군대에 맞서 승산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아랍 각국은 거의 또는 전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전쟁에 군대를 파견했다. - p.212


2주일이 채 안 되는 시기 동안 팔레스타인인 수십만명이 마을과 소읍과 도시에서 쫓겨났다. 유엔이 평화안을 내놓았지만 사람들은 심리전과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포격, 추방 등을 겪은데다 친척이 처형당하고 부인과 딸들이 욕을 보고 물건을 빼앗기고 어떤 경우에는 강간까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협당하고 겁에 질렸다. 7월에 이르러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집은 대부분 이스라엘 공병대의 다이너마이트에 날아가고 없었다. - p.270


아랍 회원국들은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 보고서에 대해 유엔 안보 보장 이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려고 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거의 30년 동안 유엔은 이스라엘의 유엔 대사 아바 에반의 모호한 언어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난민의 존재는 누구에게도 책임이나 해명을 물을 수 없는 '인도적 문제'라는 것이었다. 유엔 옵서버들은 또한 계속되는 약탈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1948년 10월까지 팔레스타인의 모든 마을과 도시가 약탈에 휩쓸렸다. 거의 1년 전 분할 결의안을 압도적으로 승인한 유엔은 종족 청소를 비난하는 또 다른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 p.322


학살에 가담한 유대군인들 또한 끔찍한 광경을 전했다. 두개골이 깨져서 골수가 비어져나온 갓난아이들과 강간당하거나 집안에서 산채로 불탄 여자들, 칼에 찔려 죽은 남자들에 관해. 몇 년 뒤에 전해진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고 며칠 뒤 최고 사령부에 전달된 목격담이었다. 이 사건은 제8여단 89대대장이 참모총장 이가엘 야딘에게서 받은 명령의 최종 결과였다. "귀 부대의 준비 태세에는 작전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심리전과 시민들에 대한 '처리'도 포함되어야 함." 다웨이메흐 학살은 1956년 요르단과의 휴전 협정으로 이스라엘에 양도된 크파르카심 마을 사람 49명을 도살하기 전까지 이스라엘군이 마지막으로 저지른 대규모 학살이었다. - p.331


1949년 8월 12일 네게브에서 지금의 가자지구 북쪽 끝에 있는 베이트하눈에서 멀지 않은 니림 키부츠에 주둔한 한 소대가 열 두 살 짜리 팔레스타인 소녀를 사로잡아서 키부츠 근처에 있는 군사기지에 밤새도록 가두었다. 이후 며칠 동안 소녀는 소대원들의 성노예가 되었다. 군인들은 소녀의 머리를 밀어버리고 집단 강간을 하고는 결국 죽여버렸다. 벤구리온은 이 강간도 일기에 적어두었지만 일기 편집자들이 검열해서 삭제했다. 가해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법원의 최고형은 실제로 살인을 한 군인에게 내린 2년 징역형이 전부였다. - p.352


이스라엘인들이 보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이 벌인 행동의 피해자로 인정하는 것은 적어도 두가지 면에서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인정하면 이스라엘이 1948년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를 통해 비난을 받는 역사적 불의를 직시해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밑바탕을 이루는 신화 자체에 의문이 던져지며 국가의 미래에 관한 피할 수 없는 함의가 담긴 일군의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다. - p.406


읽는 내내 여태껏 읽었던 그 어느 팔레스타인 분쟁사보다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스라엘인의 고발이기에 더 그럴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제사회조차 유독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점이다. 만약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 이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인권을 유린한다면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을 것인데도 말이다. 당장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다보니 굳이 미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남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랄까. 어떤 사람은 나치의 만행을 겪은 유대인들이 나치와 똑같은 짓을 할 수 있냐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유대 사회의 주류 세력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아니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포그롬(Pogroms)'을 피하여 넘어온 동유럽과 러시아 출신들이었다.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자 이 책에서 내내 언급되는 다비드 벤구리온, 6일전쟁의 영웅 모세 다얀, 철의 여인 골다 메이어, 1993년 오슬로 평화 협정을 이끌었던 라빈 대통령 등 하나같이 그 시절에 넘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장기를 거칠고 척박하고 적대적인 환경에서 보냈으며 자신과 가족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이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를 제공했을 뿐이다. 나중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넘어 온 사람들도 이스라엘 건국전쟁에 합류했겠지만 집단 광기 속에서 이들이 이성적인 목소리를 낼 기회는 없었으리라. 그 결과가 이 책에 나온 내용이다.

한편으로,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은 어째서 그렇게 당하고만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수적으로 월등히 우세했고 주변 아랍국들로부터 무기를 들여올 수 있었으며 홈그라운드라는 이점도 있었다.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릴 이유는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마치 나치의 전격전을 연상케 할 만큼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기에 부족한 느낌이다. 이 책은 전쟁사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가 몰랐고 알더라도 침묵했던 사실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짚어준다. 이스라엘과 딱히 혈맹관계나 무슨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가재는 게편이라는 격언마냥 단지 같은 친미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을 막연히 동경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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