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고 쓴 글입니다.

어릴 때는 하루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없이 살아오던 나 자신이 조금씩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더 크게 다가오는 건 부모님의 변화다.
늘 강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존재가 조금씩 약해지는 모습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방향을 실감하게 된다. <나의 200살 할머니>는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책이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우리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이 책은 백 살이 넘은 할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시간을 담담하게 기록한 이야기다. '나는 200살이야'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한마디에는 농담 같은 유쾌함과, 끝까지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저자는 그런 할머니 곁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낸다. 돌봄의 기록이라기보다, 사람이 늙어간다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에 가깝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돌본다는 것'의 무게다. 기억이 흐려지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사람을 곁에서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요구한다.
저자는 할머니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무언가를 하게 돕는다. 글을 쓰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작은 놀이를 함께하면서 하루를 채워간다. 이런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정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구체적인 행동인지 새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냥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돌보는 사람 역시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상황, 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점점 삶의 중심을 바꿔놓는다. 책 속에서 저자가 스스로를 군인 같다고 표현하는 부분은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가족을 돌본다는 건 사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읽는 내내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할머니가 혼자 남겨졌던 날이다. 서로의 일정을 착각한 사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기다렸을 그 시간을 떠올리면 쉽게 넘길 수가 없다. 나이가 든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상태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전처럼 대가족이 함께 살아가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그 책임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더욱 이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에 당황하고, 때로는 화를 냈던 기억들. 왜 그렇게 기억을 못 하냐고 다그쳤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늙어간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피할 수는 없다.
"모든 쇠락해 가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는 문장은 그래서 더 깊게 남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변화하고 사라진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시간이다.
<나의 200살 할머니 > 는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읽고 나면 슬픔만 남기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나의200살할머니 #이인작가 #향기책방 #에세이추천 #할머니 #책리뷰 #컬처블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