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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몽이님의 서재
  • 어쩌면 바라던 바
  • 정성욱
  • 16,200원 (10%900)
  • 2026-02-20
  • : 110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입니다.




정성욱의 <어쩌면 바라던 바>는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책이다. '바라던 바'라는 말 안에는 오래 마음속에 품어온 삶의 모습이 담겨 있고, 동시에 실제로 저자가 운영하는 위스키 바라는 공간이 함께 들어 있다. 갈색빛 표지 위에 놓인 의자, 위스키 병, 잔, 책, 그리고 은은한 조명은 이 책이 어떤 분위기를 품고 있는지 먼저 보여준다.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저자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 세종 특별 자치시에서 위스키바 '산문'을 열었다.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술을 따르며 사람을 만나는 삶. 이 책은 그 선택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현실과 감정을 지나 지금의 공간으로 이어졌는지를 조용히 들려준다.




책은 크게 네 개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바를 열기까지 과정, 다음은 바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술에 대한 생각, 마지막으로는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단순히 '바를 차린 이야기'라기보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는 과정에 더 가깝게 읽힌다.

정성욱은 건축학을 전공하고 설계 사무소에서 일했지만 오래도록 자신에게 맞는 길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지만 퇴근 후 원고를 쓰는 일이 오히려 더 살아있는 시간처럼 느껴졌고, 로컬을 주제로 글을 쓰며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되었다.

결국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며 바 운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바텐딩 기술부터 손님을 대하는 태도, 조명과 음악까지 하나씩 익혔다. 술을 만드는 일은 겉보기보다 훨씬 섬세했다는 그의 고백도 인상적이다. 셰이킹의 리듬, 얼음의 소리, 계량의 작은 차이가 맛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한 잔의 술 뒤에 얼마나 많은 감각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세종에 바를 열기로 한 이유도 흥미롭다. 저자는 세종이 살기에는 편리하지만 오래 머물며 마음을 둘 공간은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깨끗하고 체계적이지만 저녁이 되면 모두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고, 취향을 나눌 장소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였다가 다시 흩어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가 '산문'이었다.

'산문'이라는 이름에는 저자의 태도가 그대로 담겨 있다. 산문은 정해진 운율 없이 자유롭게 이어지는 문장이다. 그는 삶도 그렇다고 말한다.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망설임과 우연, 선택과 후회가 함께 쌓여 결국 한편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그래서 바 역시 완벽하게 꾸며진 공간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대리석 대신 밝은 상판을 두고, 흰 벽을 만들고, 한쪽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자리까지 마련했다. 위스키 바 안에 책이 함께 있다는 설정은 처음엔 낯설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첫 손님 이야기 역시 오래 기억된다. 외부 간판도 없이 건물 3층 한쪽에 조용히 자리한 공간으로 한 손님이 들어와 '올드패션드'를 주문했을 때, 저자는 식은땀이 흐를 만큼 긴장했다고 한다. 준비는 오래 했지만 실제 손님 앞에서는 모든 감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손님이 한 잔을 마시고 "맛있다"고 말했을 때,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크게 남았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저자는 그 손님을 산문의 프롤로그를 써 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말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일도 결국 현실이 되면 책임과 체력, 경제적 부담이 따라온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마음을 얼마나 오래 붙을 수 있느냐는 태도라고 한다. 이 부분은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바라는 공간이 가진 역할이다. 저자에게 바는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자리다. 혼자 와서 책을 읽는 사람,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조용히 머무는 사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까지.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처럼 등장한다. 익숙한 관계에서 꺼내기 어려운 말이 낯선 공간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도 공감되었다.

읽는 동안 전체 분위기는 화려하다기보다 차분하다. 어른의 속도로 흘러가는 이야기 같고, 들뜨지 않지만 묵직하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좋아하는 것을 삶으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결국 행동하는 사람이 자기 자리를 만든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어쩌면 이 책은 위스키 바 이야기라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자리를 조금씩 만들어 가는 사람의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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