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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몽이님의 서재
  • 낮게 흐르는
  • 변영근
  • 15,750원 (10%870)
  • 2026-01-16
  • : 2,500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어떤 책은 읽는 순간보다 덮은 뒤에 더 오래 남는다. 변영근 작가의 그래픽 노블 <낮게 흐르는>은 그런 책이다. 대사 한 줄 없이 수채화 풍경만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독자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빠르게 지나치던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느림의 호흡'을 되찾게 한다. 제목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이 책은 자연스러운 속도로 감정에 스며든다.




<낮게 흐르는>은 말이 없는 대신 장면으로 말하는 그래픽 노블이다. 작품은 여행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푸른 풍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이다. 자연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모두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다. 웃음이 나면서도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후 폭포와 물놀이 장면이 이어진다. 가족들이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친구와 얼굴을 가까이 붙여 사진을 찍는다. 여름의 공기와 물의 온도가 그림 너머로 전해진다. 이 시점까지 여행은 '함께 있는 풍경'에 가깝다. 하지만 어느 순간 흐름은 달라진다. 주인공은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나선다. 평야를 가로지르는 끝없는 길은 장소를 특정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산길을 오르고, 물가에서 쉬고, 바위를 넘고, 강을 건너는 장면들은 설명 없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지 않다. 누구나 마음속에 한 번쯤 그려본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수채화로 표현된 물빛이다. 진하지 않고, 아주 연하게 풀어놓은 색이 반복되면서 시선을 붙잡는다. 모자와 옷, 주변 풍경까지 자연과 비슷한 색으로 섞여 들어가 있어 주인공은 점점 배경 속으로 스며든다. 이 책에서 말하는 '흐름'은 바로 이런 모습에 가깝다.

읽다 보면 주인공의 나이가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장면에 따라 성숙해 보이기도, 한결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은 분명 청년이지만, 이 인물은 특정한 얼굴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의 이야기라기보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나'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큰 폭포를 향한 여행처럼 시작되지만, 마지막 장면은 의외로 소박하다. 주인공은 작은 폭포에서 수영을 한 뒤, 옷을 입고 다시 김을 떠난다. 오래 머물거나 감상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충분히 쉬었다는 듯, 담담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화려한 목적지에 도착하는 대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혹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흐름을 이어간다. 이 마지막 장면은 <낮게 흐르는>이 말하는 방식, 크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이어가는 삶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대사 하나 없는데도 장면은 또렷하다. 오히려 말이 없기에 감정은 밀려오지 않고 조용히 자리 잡는다. 늘 시간을 쪼개쓰는 일상 속에서 이 책은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빨리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고, 크게 보이는 목적지에 닿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감각. 그래서 <낮게 흐르는>은 이야기를 읽는 책이라기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속도를 떠올리게 하는 책으로 남는다. 책을 덮은 뒤에도, 연한 물빛 같은 여운이 오래 마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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