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저자의 급진성과 낯선 표현에 깜짝 놀랄 것이다. 하지만, 사유의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자의 맑고 깊은 사유의 숲에 오래 동안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지 모른다. 스퐁의 이야기는 우리의 시선이 지금 이곳을 벗어나지 않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의식은 한층 더 확장되고 깊어진 듯하다.
요한복음을 신비주의 관점으로 새롭게 접근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 속에, 우리도 하느님의 존재에 함께 참여하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의식이 하느님의 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것을 충만하게 의식함으로 우리가 '생존의 존재에서 사랑의 존재로 옮겨가며, 하느님의 실재에 참여하며 그 실재를 드러낸다'고 한 말한다. 그래서, '믿기보다는 경험하며, 교리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며, 하느님은 우리의 존재가 참여하는 궁극적인 존재'(p250)라고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을 오래 펼쳐두고 보았다.
스퐁은 정통신앙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나와 생각하고 새로운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신앙의 과제가 단순한 믿음에 머물지 않고 살고living, 사랑하고loving, 존재하는being 과제이며, 그래서 신앙의 사명은 개종Convert가 아닌 변혁Transform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거기서 폴 틸리히의 말처럼 존재할 용기Courage to be를 발견하고 존재의 근원Ground of Being과 소통하게 하는 것이라고(p294).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존재의 근원을 망각하고 존재의 용기 없이 사는 삶은 부유하게 될 뿐이다. 보이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연결된 생명의 끈을 의식하며 그 의식을 더 확장시켜 가야 할 것이다. 지금 살고, 지금 사랑하고, 지금 존재하여 영생의 일부가 되는 것은 무슨 말일까? 장벽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완전한 자아의식을 지닌 인간됨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맛보게 하는 것, 이것이 스퐁에게는 영생의 의미 속으로, 보편 의식 속으로 들어 가는 통로다(p295).
매우 솔직하고 급진적인 서술이다. 동의 비동의를 말하기보다 나의 이성과 마음이 아직 이 책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비좁기만 하다. 이토록 깊고 절박한 통찰은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우주에서 한 점, 아니 먼지만큼도 되지 않는 지구에서 잠깐 숨쉬다 가는 인생이 무한의 하나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있을까마는, 우리에게는 그 존재자에 대한 상상만큼은 허락되었다. 행운이고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