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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으기
  •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 12,600원 (10%700)
  • 2016-10-14
  • : 96,029
남자로서 여자의 감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여성들 가운데 모친과 아내가 가장 가까운 여성인데, 솔직히 두 사람의 내면을 헤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여자가 되지 않는 한 남자로서 여자의 속을 어찌 알겠는가? 오래 전 모친에게는 '아들 놈들이 뭘 알겄냐?'는 핀잔을 들었고, 결혼 후에는 이해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충돌을 겪었다. 직업상 수 많은 여성들을 대해야 하는데 그들의 상황과 정서를 모른채 대충 지내고 말았을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구입한 지는 여러 달 전인데 이제서야 읽어 보았다. 여성은 참으로 많이 오래동안 숨죽이고 살아왔다. 불편해도 무시당해도 억압을 당해도 그냥 입을 다문채 지내왔다. 이 책을 통해 나와 가까이 있는 여성들이 말해주지 않은 이야기들, 말할 수도 없는 속앓이를 들을 수 있었다. 
초반에 산후 우울증과 육아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김지영 씨가 남편에게는 남편의  대학 여자 동기의 목소리로 말하고, 명절날 시어머니에게는 친정 어머니의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에 당황했다. 김지영 씨는 당당하게 대항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시절과 대학생활, 직장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운 순간마다 지영 씨를 대신하여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정작 자신이 말해야 할 때는 하지 못했다. 작가는 이 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내었다. : 얼마 전 결혼한 제자 부부를 만났었는데 부인이  딸을 출산하고 산후우울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힘들겠다고 예의상 건넨 말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내심 당황한 적이 있었는데, 김지영 씨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모습이 겹쳐졌다. 
"넌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_p105.  김지영 씨 아버지의 대사다.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 말을 들은 여성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지영 씨에게 이 말은 돌덩이가 되어 가슴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엄마는 참지 못하고 식탁을 내리쳤다. '그냥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 대부분 아버지들의 대사다. 나 역시 정확히 기억도 못하겠지만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비슷한 대사를 했을 테다. 
어렵게 입사하 홍보대행회사에서 기획프로젝트에 선발되지 못하고, 승진에 대한 압박을 받는 김지영 씨의 모습을 작가는 '미로에 선 기분'_p123 이라고 했다. 애초부터 출구가 없는 미로, 효율과 합리성을추구하는 기업 문화에 공정함을 따져 보지만 무력할 뿐이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무엇이 남을까 남은 이들은 행복할까 하고 질문한다. :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구조에서 행복을 질문한다는 건 사치가 아닌가. 공정함과 행복을 잊지 않았다는 건 인간다움이 남아있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얻도록 자비롭지 않다. 김지영은 아이를 갖고 나서 더 심한 차별을 겪는다. 택시를 탈 때, 지하철에서, 정형외과에서, 동네 커피숍에서, 툭툭 내 뱉는 통념과 편견에 가득찬 말에 분해 한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_p164.커피숍 옆 테이블에서 자신을 염두하고 한 이 말에 김지영 씨의 분은 극에 달하고 만다. 그래도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아무 표현도 못하고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만 쏟아 놓았다. 남편 정대현 씨는 아무 소리 없이 지영 씨를 끌어 앉고 토닥여 주었다. '맘충...', 타인을 벌레에 빗댄 표현에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 분위기가 느껴졌다. 엄기호의 <단속사회>에서 지적했듯이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여성들과 함께 하는 남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여성들과 남성들이 사는 한국사회는 무엇을 해야할까. 
자아실현과 건전한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여성이 겪는 차별과 경력단절, 육아와 가정, 등의 고민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잘 그려내 주었다. 여기서는 나오지 않은 부분을 염두해야 한다. 여성으로 살 때 얻는 삶의 의미와 기쁨이 있다는 것,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에 따른 것 말고 여성 자체로서의 정체성과 행복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부분은 어느 쪽에서 말해주어야 할까.
여성들이여 기죽지 마시기를.남성들이여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여성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기를. 공감이 어렵다면 그냥 자주 끌어 안고 토닥여 주기라도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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