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코린토스, 올림피아, 아르고스, 스파르타가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다니면서 기록한 기행문이다. 저자는 지리, 문화, 신화, 역사, 문학, 종교, 등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펠로폰네소스를 살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2013년에 출판한 책인데 이제서야 만났다. 읽으면서 아쉬움과 후회감이 크게 밀려 왔다. 2014년 터키~그리스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여행은 얼마나 준비없이 다닌 여행인지를 깨달았다. 코린토스에 들러 운하와 도시 터는 보았으나 아크로코린토스는 올라가지 않았다. 올림피아가 펠레폰네소스에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다. 올림피아 박물관의 페디먼트를 못 본 것이 너무나 아쉽다. 스파르타에 가서 헬레네와 관련된 이야기와 레오니다스 왕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면 얼마나 풍성한 여정이 되었을까. 물론 나의 여정은 단체로 가는 것이었고 초대 기독교 유적을 중심으로 다녀야 했기에 여기에 나온 여정은 어림도 없었다.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 신화와 종교, 문학 등의 내용을 더욱 충분히 살피지 못한 탓으로 내 여정은 수박 것핥기와 다름 없다. 늦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리스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구글지도를 열어 저자가 간 곳을 찾아 보고 그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읽었다. 어느 정도 실제감을 맛볼 수 있었다. 고린도 박물관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얻었다. 올림피아 박물관의 페디먼트에 대한 설명은 얼마나 생생한지 모른다.
이 책은 단순 기행문이 아니다. 저자는 혼자 다니지 않았다. 그리스 사람이고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함께 다녔다. 카잔차키스의 글을 곳곳에 인용하여 카잔차키스와 대화하듯이 엮어 내었다. 이것이 이 책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할 수 있다. 카잔차키스의 말 한 곳을 적어 본다.
p176 "분명코 구원은 있다. … 그들처럼 신을 구름 위의 옥좌에 모셔놓아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것이 구원이다. 따라서 속세야말로 우리들의 수도원이고, 흙을 만지며 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자가 참된 수도자가 아니겠는가?" ... "나는 각 시대마다 저마다의 '아우성'이 있다고 믿는다네. 따라서 지금 우리 시대의 외침을 듣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길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만이 진정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는 걸세. ... 이런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시대의 요구를 읽고 애쓰는 삶, 그것이 바로 참구원 아니겠는가. 그러니 천상의 구원과 지상의 구원은 다르다는 뜻일세."
4장 "성과 속의 충돌" 에서 나온 구원에 대한 언급은 필자가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실과 이상이든, 구원이든, 어쨌든 이 땅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이 땅의 종교들은 구원을 지향하는데 그것을 자꾸만 지금 여기서가 아니라 훗날 저기서로 미루고만 있다. 자신이 풀어 가려고 하지 않고 다른 이가 풀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을 현실에 이루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그리스로 가고 싶은 생각이 진한 그리움처럼 일어나 밀려왔다. 언제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