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면서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화려했던 시절은 어느새 과거의
영광으로 빛이 바래졌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영국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많은 나라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브렉시트 등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지만 산업혁명과 의회민주주의 등 근대
세계를 선도했던 영국의 역사는 이 책의 제목대로 제국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사 전문가인
저자는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해적 얘기로부터 풀어낸다.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기 시작한 결정적인 순간으로는 역시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해상의
지배자가 된 1588년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선 '나쁜 세계사'라는 책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과장된 신화라는 견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해적이면서 모험가이기도 했던 드레이크가 무적함대 격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영국이 바다를 주름잡으며 해군의 나라임을 만천하에 알렸다는 사실이다.
넬슨 제독이 등장하면서 더욱 굳건한 해상력을 유지한 영국은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이나 독일의
공격도 막아내면서 자유의 수호자 역할까지 했는데 이는 모두 압도적인 해군력에 근거한다고 할 수
있었다. 한편 영국은 자유가 태어난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왕의 권력을 제한해 온
전통이 존재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이 온 유럽을 휩쓸 때에도 영국은 이미 명예혁명 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산업혁명의 불꽃이 타오른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책에선 상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했고 상인 및 숙련 노동자들의 존재가 뚜렷했으며 농업도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앞서 발달했고 농촌 사회가 빨리 해체됨으로써 사회 전체가 봉건제의 구속에서
빠르게 해방되는 과정에서 개인주의가 등장하고 사람들의 사회적 유동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게다가 확립된 장자상속제를 바탕으로 한 재산권 보장과 개신교 신앙 및 과학적이고
경험주의적인 문화적, 정신적, 지적 풍토가 맨 처음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대영제국이라는 이름 하에 두게 되었는데
다른 유럽 제국들과는 다른 통치 방식으로 인해 대영제국 소속이었던 국가들은 비록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독립 후의 행보가 사뭇 달랐다. 특히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된 스페인 모델과는
달리 다수에게 배분된 재산권과 민주주의로 독립 후에 북아메리카가 남아메리카보다 더 잘 사는
모습을 통해 확실한 비교우위를 보여줬다. 영국 전문가라 그런지 영국이 세계 최고가 되었던 시절의
원인을 다양한 각도로 잘 분석한 책이었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친영파라 그런지 긍정적인 부분을 더 부각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여러 모로 근대 영국의 역사를 잘 정리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