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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一花

19. 그때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이 세존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고따마 존자께서도 바후까 강으로 목욕을 가지 않으십니까?“

”바라문이여, 바후까 강이 무슨 소용 있는가? 바후까 강이 무엇을 할수 있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많은 사람들은 바후까 강이 해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많은 사람들은 바후까 강이 공덕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바후까 강에서 많은 사람들은 악업을 씻어 냅니다.“

20. 그때 세존게서는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에게 게송으로 설하셨다.

”바후까, 아디깍까, 순다리까, 사랏사띠, 빠야까, 바후마띠 강에

어리석은 자들이 항상 뛰어들지만 검은 업을 맑히지 못한다네.

순다리까 강이 무엇을 하며 뺘야까 강이 무엇을 하며 바후까 강이 무엇을 하겠는가?

살생 등 나쁜 업을 지었고 잔혹한 행위를 했으며

악업을 지은 그를 이 강들이 맑히지 못한다네.

청정한 자에게는 나날이 팍구나의 보름날이요, 포살일이니 마음이 청정하고 몸의 행위 등이 깨끗한 자는 항상 서계를 구족한 것이라네,

바라문이여, 그대는 바로 여기서 목욕을 하라.

모든 존재들에게 안온함을 베풀라. 만일 그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믿음 있고, 인색하지 않으면

가야강에 갈 필요가 뭐 있겠는가?

우물도 그대에게 가야 강이 되리.“

맛지마 니까야 1권 옷감의 비유 경. p.266~268

 

삼천배를 다닌 적이 있다. 좌선을 한 적도 있고 사경도 했다.

그 모든 가르침이 결국 마음을 목욕하는 행위인데

마음을 보지 않고 경계를 바꾸는 기도를 했던 것 같다.

강물에 목욕해서 공덕이 지어지고 업이 덜어진다면 목욕하는 쉬운 길을 택하지 인내를 요하는 일상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불교가 뭔지도 모르고 옆 도반을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힘든 수행을 했으니 마음은 저절로 맑아지는 줄 알았다.

오계만 제대로 지켜도 그게 마음의 목욕인데, 그 오계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생명을 해지지 말라는 가장 기본적인 계도 지켜지지 않는다.

시골 집이다 보니 가끔 지네가 나온다.

보기만 해도 비명이 절로 나오고 쳐다 보기도 두려워서 현관문 방충망 레일 위에 약을 뿌린다.

혹시나 집에 오는 길고양이들이 해를 입을까봐 밖에는 뿌리지 않고 현관 안쪽 레일 위에만 뿌려도 지네가 그쪽으로 들어오는지 죽은 시체를 보기도 한다.

지네는 시체도 무섭다.

지네도 모기도 파리도 나의 사적인 영역을 넘어오는 것을 그냥 두기는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 변명을 한다.

’제발 너희들 구역에 살아. 집에는 들어오지마. 이건 정당방위야.‘라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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