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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a2223님의 서재
  • 세 여자 1
  • 조선희
  • 12,600원 (10%700)
  • 2017-06-22
  • : 2,526

  이 책을 만나기 전, 나는 역사소설이라곤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역사소설이 지닌 무게감이 때문일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비현실적이게 느껴졌고, 픽션이 가미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순수소설이 아니라고 하대했다. 근현대사의 역동이 버거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알게 될수록 책임감이 아닌 죄책감이 먼저 밀려왔다. '만약 나라면 저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겪지 못한 시절 앞에서 자꾸만 비겁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 여자>를 펼치기까지 나는 자꾸만 머뭇거렸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세 여자>는 식민지 조선 당시 청계천 개울물에 발을 담군 단발머리 세 소녀의 사진에서부터 시작하는 조선희의 새 장편 소설이다. 머리를 자르는 일마저 대중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시절, 주세죽과 허정숙, 고명자는 '조선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를 결성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상해와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독립운동을 소명으로 삼았고, 경성의 여성동우회를 이끌며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뿔뿔히 흩어진 그들은 서울과 중국 연안,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해방의 시대를 맞는다. 그러나 혼란한 남북 분란의 시대는 그들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고명자는 인민위원회 활동 도중 홀로 죽음을 맞이했고, 죽세죽은 모스크바에서 병에 걸린 후, 허정숙은 북체제의 변화를 지켜보다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에 비해 주목받지 못 한 세 여자. 조선희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었던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버텨온 세 여자의 일생을 뒤쫓으며, 역사의 뒤안길에 놓였던 이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은 내 머릿속엔 6월 6일 제 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가 떠올랐다. 문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한분 한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 천장이 낮아 허리조차 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노동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으며 그것이야말로 "애국"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삶에 주목하는 일. <세 여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머리를 짧게 잘라도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던 암울한 시대에 세 여자는 여성으로서 독립운동과 한국 공산주의운동을 이끌어 왔다. 격동의 시대를 버티다 외롭고 쓸쓸히 죽어간 이들은 용기있었으며 굳건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오늘날 우리에게마저 외면 받을 수는 없다. 나는 <세 여자>를 읽으며 지나간 역사에 죄책감이 아닌 고마움과 책임감을 느꼈다. 교과서 속 해설이 아닌 소설 속 이야기였기에 가능했다. 픽션이 주는 거리감과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요소 덕분이었다. 페미니즘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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