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의 진짜 무대는 어둠이다. 공연 직전의 대기실, 조명 꺼진 콘서트홀, 묵직한 악보 속 검은 음표, 무명 시절 오르세미술관 지하에서 반주를 넣었던 무성영화, 컴컴한 비행기 안과 끝없는 불면의 밤까지. 타로는 일상이라는 무대에 올라 건반 대신 삶의 조각들을 매만지고 기록한다. 고독과 자기 탐구의 줄타기를 통해 마주한 깊은 내면이 여기에 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자 여행 가방을 챙기는 밤, 이 작고 가벼운 책을 쥐고 상상한다. 소금기 밴 속초의 밤바람, 두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은 밤. 그 어둠을 향해 맨손을 뻗어 보자. 공연이 끝난 후 관객의 요청에 두 손을 펼쳐 내미는 알렉상드르 타로처럼, 그렇게 우리는 그의 영혼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