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걷는대로 열린다네
후저어써 2022/01/1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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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긴밤
- 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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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 2021-02-03
: 145,848
1
남다른 관점을 찾도록 해. 너무 드러나 있어서 다 똑같은 평가를 내리게 되는데, 그렇게 남들과 비슷한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을 무시하는 꼴이야. 그래서 나는 자꾸 비딱해지고 깎아 내리고 싶은 심정이 들지. 고작 그 한 가지라면 너무 단순해 지는 거잖아, 너나 나나. '한 마리의펭귄을 키우려며 온마을이 필요하다'거나 '한 존재에게는 한 우주가 담겨있다'거나 하는, 아름답고 심오한 시는 이미 들었다고! 부정하는 게 아니야. 코끼리의 자유와 개성에 관한 지혜와 넉넉함, 아내 코뿔소의 과감한 사랑, 앙가부의 긴긴밤을 보내는 방법과 바람 같은 소망, 치코와 윔보의 유머러스함과 담대함이 향한 생명에의 헌신과 약속, 그 고귀함을 배신하지 못하고 그에 굴복하여 얻은 평화, 그에 따른 아름다운 결실. 이런 건 그대로 차라리 낭만적인 노래요, 가사지. 사람들이 항상 바라고 늘 부르는 사랑의 노래! 노래는 술처럼 한 밤을 취하게 하고 춤추게 하는 용도야. 그러니까 대중가요 같이 휘발되고 소비되는 꼴인 거지. "너의 눈물과 감동은 고작 며칠짜리니?" 하고 묻고 싶어진다니까. 한마디로, 만끽하되 그에만 만족하거나 머물지 말자고.
2.
이를테면 이런 걸로 방향전환할 수 있지. 코끼리의 코와 코뿔소의 코. 둘 다 코와 관련되지만 긴 코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평화의 도구인데 반해, 소뿔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공격용 무기라는 점. 어떤 게 좋고 나쁘다라고 말하자는 게 아냐. 그런 건 쉽고도 유치한 일이지. 오히려 주목할 지점은 이런 특성이 선택이 아닌, 타고났다는 점. 그러므로 천성이나 유전적 성품으로 비유할 수 있어.
- 좋아. 듣고보니 그게 이야기의 복선이 되는 것 같아. 노든은 언제부턴가 자기 뿔의 힘을 깨닫지. 그리고 항상 들이받을 준비가 된 것 같거든. 그 기회가 친구들 덕분에 무마됐지만.
= 그렇게보면 잘린 뿔이 자라고 겨우 한 번만 사용되었고 거의 없는 것처럼 살지. 마치 진정한 힘은 뿔이 아니라 말이고 마음이라는 듯. 뿔의 힘은 총의 힘을 부르는 무모함이고, 당할 수 없는 미약함이라고 굴복시킨다. '힘으로 흥한자 힘으로 망하리라' 를 설득하지. 이 설득은 노든을 향하지만 결국 독자를 향해. 좀 치욕스럽고도 기존 이야기들과 다르지. 보통은 그 힘과 특성을 적절한 시기에 꼭 발휘했으니까.
- 다르게 말하면, 여성적 경로를 택했다고 보여. 감동적이면서도 답답한 마음과 반감이 드는 지점이 거기인 것 같아. 특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과 같잖아. 남성적 입장에서는 치욕이자 굴욕이지. 질까봐 맞을까봐 아예 대들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는 굴욕이니까. 그게 굴욕이면 억울하고 속상해서 병이 되겠지. 그러나 노든은 곧 전환해. 그런 남성적 논리=대의명분에서 여성적 논리=돌봄으로!
3.
'대타자 투입작전'이란 말이 그래서 필요해. 지배적 남성권력의 대타자의 목소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다른 대타자. 그는 홈런을 날리거나 한방 쳐주는 큰타자이기보단 희생번트를 대거나 공을 날려서 플라이볼을 만들 거야. 틈새로 달리기하거나 큰 아치가 만들어지면서 보게 되는 파란 하늘 후에 달리기하는 거지. 격투기가 아닌 자기 라인을 달리는 것 말이야. 각자의 길을 누가 잘 가는지를 겨루는 거야. 방해하거나 빼앗거나 짓밟지 말고. 혹시 누가 그리 하더라도 그 다툼에 그 규칙에 휘말려 들지 말고 빠져나오라는 거지. 무섭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기 때문이야. 무엇보다 나 자신과 너 라는 존재에게 그 게임은 너무 비겁해서 무섭고, 일방적이라 지저분해. 원형경기장을 벗어나면 초원이고 푸른 하늘과 강과 바다가 있어. 그 무례한 자연이 온화하고 깨끗하지. 시간은 공정하고 길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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