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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 줄리애나 배곳
  • 16,200원 (10%900)
  • 2025-03-14
  • : 1,650



천선란 작가의 추천 타이틀 띠지 <천 개의 파랑>을 읽고 천 개의 파랑을 처음으로 생각했었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에서 바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천 개의 파랑이 있고 사람들을 들여다보아도 그렇다는 걸 느낀다. 존재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지만 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조금씩 다른지를 보려 애쓴다면 세상은 더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다가올 듯싶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제목이 나 같은 사람을 자극한다. 슬픔이 우주에 구멍을 낸다는 건 자명한 것 같고, 슬픔이 아니더라도 내면에 구멍을 내는 것은 너무나 많다. 읽다 보니 SF 적인 단편 소설 이라는 걸 알았다.

SF 소설 중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은 뒤로는 모든 SF가 그 소설의 모세혈관처럼 느껴지며 <멋진 신세계>를 향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인간이 동맥만으로 살 수 없듯이 둘 다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단편 소설들도 의미 있게 읽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새로운 곳이 자극되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상상해 보지 못했던 것들. 그렇지 SF 소설을 읽는 이유에는 그런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옥스헤드의 아들> 중에서

p 15

이후 몇 주 동안 거짓 정보가 횡행했다. 너희는 단체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거야. 애들아. 집단 환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란다. 이따금 있는 일이야. 이 비디오를 보면...... 여러 무리가 생겨났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부정하고 거짓 정보를 믿기로 한 아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부모를 되찾고 싶어 하였다. 안전한 어린 시절을 누릴 수 있다면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레이의 졸업반 프로젝트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동물은 멸종할 가능성이 더 높다.

준은 나가려는 쪽이었다. 거짓인 줄 알면서 이대로 살 수는 없었다.

-> 감상​

인간적이라는 것은 의심한다는 것, 그리고 또 믿는다는 것인 것 같다. 진짜 부모는 사라지고 부모와 똑같이 생긴 AI 휴머노이드가 아이들을 돌보는 세상. 나는 그건 참. 싫다. 디스토피아 SF에서 부모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세다고 느낀다. 유년 시절에 부모가 준 상처가 깊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아가며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내가 좋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있지 못하고,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사랑을 전하는 모든 것에 서툴러진다면 그것이 가져오는 세상이 바로 디스토피아일 거라 생각한다. 모성적인 사랑 없으면 세상은 쉽게 파괴되어버릴 것만 같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중에서

p38

몇 달 뒤 엄마는 아빠가 곧 세상을 떠날 거라고 했다. 공해물질 때문에 폐 질환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개구리만 보냈을 뿐, 아빠도 연락하지 않았으니까. 아빠가 미웠다. 나는 개구리를 하나씩 조립했다. 완성하면 충전해서 당시 사는 곳이 어디든 그 동네에 놓아줬다. 개굴, 개굴, 개굴. 개구리는 충전된 에너지로 폴짝폴짝 뛰어갔다. ​

내게 밟히지만 않으면.

이따금 나는 밟았다.




 

p 47

그는 현재 지구상에서 로봇 개구리 조립 세트를 내게 선물한 유일한 사람이다.

나는 일요일 오후 개구리를 조립했다. 놓아주지도. 밟아 뭉개지도 않았다. 개구리는 내 아파트 안에서 뛰어다니며 이따금 고양이를 놀래주기도 하고 나를 소스라치게 만들기도 한다. 반짝거리는 납작한 개구리. 그 눈빛은 나에 대해 뭔가를, 나 자신도 아직 깨닫지 못한 뭔가를 알고 싶은 것 같다.

감상 -> ​

개구리를 밟든, 개구리 기계를 밟든 그 밟는 행위가 주는 파괴력이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생각으로는 나도 한번 밟아보는데 그게 쉽지 않다. 생명이 있는 건 무엇이든 작정하고 죽여본 적이 없고 부숴본 적도 없고 어떤 파괴든 자 자신에게 유익한 파괴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는 연인 관계에서 평가가 좋지 않게 끝나서 경고를 받으면 정부 차원에서 관리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이 있다. 인간관계의 루저가 된 셈인데, 비 상식적인 행동을 보여서 온 사람들이 있고 내면의 상처와 방어 기제로 소통과 관계가 어려워서 그런 경우도 있다. 주인공 역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고 보호 받지 못했던 상처가 보인다. 사실 그보다는 아버지의 연락 두절이 낳은 '단절'과 '소통 부재'가 만든 싱크홀이 이후의 삶과 연인 관계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처음 의도가 어떻든 서로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회복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스토리를 알고 이해하고 건넨 로봇 개구리 조립 세트가 우주의 구멍을 메워주고 있었다.







수록 소설들을 통해 우주에 구멍을 내는 파괴의 순간을 보는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다시 연결되고, 회복하고, 희망하게 된다. 한 사람이, 작은 뭔가가 우주보다 크게 느껴지던 구멍을 메워가는 그것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홀리 마틴이 여기 있다> 중에서

다 자라기도 전에 버려진 딸.

그녀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암, 끔찍하고 빨랐다.

소녀와 소녀의 엄마, 오빠는 아직도 새로운 궤도를 찾으려고, 아버지의 부재라는 뻥 뚫린 거대한 진공을 중심으로 가정을 다시 꾸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는 좋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또 다른 소녀, 망자가 되어 어떤 가족 사이에 섞여 있는 기분, 나는 그들을 보는데 그들은 나를 볼 수 없는 기분.

p 53

홀리는 존재하고 싶고, 뭔가 하고 싶고, 소리를 내고 싶다. 그녀는 가슴에 열망을 품고 소녀의 집을 향해 달려가지만, 뭔가의 가장자리와 마주친다. 생각 하나가 끝난 것 같다. 앞을 볼 수는 있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감상 ->

마음의 진공 상태. 싱크홀 같은 곳에 빠진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설명하고 싶어도 희미하기만 한 것들이 슬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지금의 지금> 중에서


시간을 멈출 수 있고, 그 멈춰진 시간 속에서 나만 자유롭다면 어떨까. 원초적인 SF적 상상이지만 신선했던 이유는 어쩐지 지금 현실에서 누군가의 비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 같아서였다.

나는 조금 더 한참 읽어 가야 하지만 리뷰는 이렇게 마쳐야 해서 아쉽다. 넷플릭스로 작가의 이 상상력이 영상화가 진행 중이라는 말에 꼭 완독 하고 영상도 기다려 보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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