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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불호텔의 유령
  • 강화길
  • 12,600원 (10%700)
  • 2021-08-13
  • : 2,765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꺾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악의를 지닌 것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네가 이룬 모든 것들을 잃게 될 거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말들, 그렇게 느껴지는 반응들.

 

나 역시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그런 저주 같은 반응에 시달려 왔다.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한때는 이제 그런 악의에 더는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무엇이 싫은지 표현하기는 쉽다. 무엇이 좋았는지 생각을 정리해 전달해내는 것은 그것보다는 어렵다. "무언가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41쪽), 그게 귀티라면 얻기 어려워야 마땅하겠지. 그래서 다들 나에게 그러는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192쪽)더라. 마음이 꺾이는 순간 나를 해치려는 수많은 감정들이 내 속에 끈적끈적하게 엉겼다.

 

<대불호텔의 유령>은 바로 그 끈적한 감정들을 녹이고 부풀려 유동적인 상태로 만든다. 소설을 읽으며 내 안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낀 후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나쁜 마음들을 그대로 다시 내 안에 굳혀버릴래? 아니면 흘려 보내고 힘든 상태에서 벗어날래? 역시나 현상을 유지하는 건 쉽고 벗어나기는 그보다 어렵다. 나는 아직 내 안에 귀신을 가둔 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대불호텔의 유령>은 현대와 1950년대가 교차하며 인천의 대불호텔에서 일어난 사망사건을 다각도로 복원해내는 소설이다. 현대에 사는 소설가 ‘나’ 역시 악의적인 목소리에 시달린다. 현실에서 들었을 법한 그 목소리는 소설화되어 귀신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목소리를 들을수록 악에 받치고 받쳐서 자신의 소설관까지 흔드는 상황에 처한 ‘나’.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할 섬뜩한 소설을 쓰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구원처럼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마 그냥 데이트하고 싶어서 꺼낸 말인 것 같은데) 남자친구가 인천에 으스스한 건물이 있다고 소개해주자 ‘나’는 당장 그곳으로 달려간다. 인천의 대불호텔. 폐허가 된 곳에서 여자 귀신의 형상을 본 ‘나’는 대불호텔 사망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자기 나름대로 복원해 소설로 다시 써 본다.

 

그런데 1950년대 인천이 무대라니. 6.25 전쟁으로 그 어느때보다 살벌하고 날카로워졌을 그곳 사람들의 내면에 귀신 하나씩 숨어있었으리란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당장 나 살 곳도 찾을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한데 화교들이 대불호텔 근방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자리잡기 시작한다. 웬 어린 여자가 호텔을 차지하더니 나보다 번듯하게 살아간다. 그 여자를 해코지하려 하면 호텔에 깃든 유령이 되려 나를 공격한단다. 아마 실제로도 대불호텔 주위는 원한과 악의로 들끓었을 것이다. 어쩌면 소설에 묘사된 것보다 더욱 지독하게.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대불호텔 사망사건의 뒷이야기, 또다른 뒷이야기가 덧붙자 그 사건에 숨어있던 아름다운 감정 또한 드러난다. 나는 그 아름다운 마음이 그때 그 시절 인천에, 이 책 <대불호텔의 유령>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발견해내는 순간이 좋았다.

 

이 소설은 유령이 나오고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는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다 읽고 나니 정말 무서운 건 우리 안에 담긴 악의인 것 같다. 아마도 강화길 작가님은 우리 마음 속의 악의를 깨운 후 그걸 몰아내기를 바라며 이 소설을 쓴 것 같다. 그래서 결말부에서는 날카로워져 있던 내 마음이 확 풀어지며 온화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여전히 나는 다시금 악의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태로 현재를 맞는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안에 숨어있는 귀신을 함께 본다. 그 귀신들이 사람의 외피에서 튀어 나와 발설하는 악의를 한발짝 떨어져서 지켜본다. 내 안팎의 귀신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오히려 “웃을 수 있다”(305쪽)는 생각이 든다. 유령 이야기를 읽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다니. 이것은 강화길 소설이 부리는 주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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