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황금가지, 202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유령처럼 살다 유령이 된 여성
이 소설은 도쿄 한복판 기차 건널목에 실체 없는 존재를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다.
사진 속 유령은 고급 맨션에 사는 무료한 주부가 상상력을 발휘해 지어낸 이야기나 비행 청소년이 모이지 못하게 하려고 학생주임 선생님이 지어낸 괴담 속 주인공이 아니다.
이 소설은 살해당한 여성의 이야기다.
‘2년 전 아내가 죽은 후 가정을 내팽개쳐야 할 정도로 바빴던 일에 염증을 느끼고 신문사를 나온 마쓰다는 파괴적인 상실의 아픔’(31쪽)으로 삶의 의욕이 꺾인 상태다. 전직 사회부 유군 기자이자 현직 여성지 계약직 기자 마쓰다는 등 떠밀리듯 취재를 시작하는데.
마쓰다는 여자가 살해 현장에서 기차 건널목까지 피를 흘리며 걸어간 이유를 궁금해하던 날 밤 새벽 1시 3분에 걸려 온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는다.
“마쓰다는 수화기를 쥔 채로 방금 들었던 음성이 현실인지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찰도 함께 딸려 왔다.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121쪽)
마쓰다는 유령처럼 살다가 유령이 된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취재하기로 한다.
유령의 실체에 가까이 갈수록 드러나는 야쿠자 조직의 어두운 그림자.
마쓰다는 종이 새를 접던 작은 여자아이가 ‘늘 음울하게 웃으며 돈을 위해 몸을 파는 성격 나쁜 여자’가 되기까지의 굴곡진 삶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해 피투성이가 된 채 살해된 가련한 여성을 본다.
작가가 정치가, 건설사, 폭력단, 그 틈새에서 사라져간 성매매 여성인 유령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는 건 의미심장하다. 마쓰다의 취재가 생계 수단으로 팔리고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돈 대신 지불되고, 비밀을 덮기 위해 사라져 간 여성이 자신의 사랑해 준 사람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행위로 읽혔다.
“마쓰다는 의지의 힘을 쥐어짜서 팔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는 상처 입고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끌어안으려 두 팔을 내밀었다. 긴 머리 여가자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넘어 마쓰다와 접촉하려는 순간 그 모습이 사라졌다.”(351쪽)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울리는 매마른 파열음. 어디선가 나무줄기가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린다면 억울하게 사라진 존재의 울음소리일 수 있으니, 이 가련한 존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직접 대면할 만큼 담이 크지 않다면 이 소설을 읽을 것을 추천한다.
외투 단추를 채우는 점잔을 떠는 손짓이나 어깨에 힘을 바짝 주고서 걸어가는 모습에서 숨길 수 없는 허영심이 보였다.-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