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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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책장을 넘기지 말고, 손톱으로 줄을 긁지도 말며, 책장을 접어서 읽던 곳을 표시하지도 말라. 책머리를 말지 말고, 책을 베지도 말며, 팔꿈치로 책을 괴지도 말고, 책으로 술 항아리를 덮지도 말라. 먼지 터는 곳에서는 책을 펴지도 말고, 책을 보면서 졸아 어깨 밑에나 다리 사이에 떨어져서 접히게 하지도 말고, 던지지도 말라.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를 긁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지 말고, 힘차게 책장을 넘기지도 말며, 책을 창이나 벽에 휘둘러서 먼지를 떨지도 말라.”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이덕무, 솔출판사 1996)


책을 이렇게 여겨야 하는데, 읽고 싶을 때 펼치는 건 좋고, 책을 두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애물단지 같고, 그렇다고 막 내다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진짜 아껴주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이 환경이 가끔 원망스럽기도 하더라는...


지난달에 조경국의 『책 정리하는 법』을 읽고 있었는데, 신간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런 책(솔직히 책 정리는 포기한 상태라서 이런 책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리 없다는?)을 읽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고, 그래도 이 작은 공간에 쌓아둔 책을 조금이라도 숨 쉬게 해주기 위한 뭔가 기발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읽기 시작했던 건 아닐지 추측해본다. 이제 와서 말이다. 제목부터 기대하게 만들지 않은가. 이 책에서 제시해 줄 책 정리 방법을 따라 하다 보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정리법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만 하는 건 아니겠지. 암튼, 그러다가 이 책을 읽는 중에, 이 책을 언급하는 다른 분들의 글이 이상하게 자꾸만 보이게 되는 터라(일부러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눈에 띄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 책을 완독하고 할 말을 찾아야겠다 싶었다는 게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은 목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전자책으로 책장의 책을 바꿀 게 아니라면, 역시나 종이책은 보관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다. 예전보다 종이책 사는 비중이 줄기는 했으나, 지금도 꾸준히 종이책을 사고 있고, 작은 책장에 꽂아둔 책은 늘 포화상태이다. 거기에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까지 여기저기 쌓여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오는데, 또 이런 습관(책 사고 책 빌려오고)이 고쳐지지도 않는 터라 다른 변화를 꿈꾸지는 않는다. 이런 패턴 안에서 집안을 조금 덜 어지럽히는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이 그냥 또 한쪽에 잘(?) 쌓아두는 거라는 건 안 비밀이지만, 하아, 또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책을 들여오는 것만큼 이 집에서 내보내는 비율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가 추가되는 부분인 듯하다.


저자는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서 급기야 돈을 주고 사무실을 빌려 책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던데, 이 방법은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공간이 협소하다면, 내가 가진 책을 도저히 줄일 수가 없다면, 이 책들을 보관할 장소가 따로 마련될 수도 있다면, 그래, 나만의 공간을 꼭 내 집안에 마련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저자의 방법에 귀가 솔깃해졌다. 아주 잠깐. 지난번에 어느 분의 말씀처럼 아무래도 집 외의 다른 공간을 마련하자면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하고, 또 어느 분의 말씀처럼 같은 뜻을 가진 여러 명이 모여 얼마씩 갹출하여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소유로 유지하는 방법도 있을 테다. 하지만 좋은 의미로만 볼 수 없는 게 또 다른 문제들이 남겨져 있었으니, 그분의 말씀처럼 각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의미가 있을 거고, 공동으로 이용하자니 각자 필요할 때 필요한 책을 소유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음... 내가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나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도 잘 안 갈 것 같다는 거다. 이 작은 집 안의 작은 방에 만들어둔 서재도 하루에 한 번도 안 들어갈 때가 있고, 내가 읽은 책도 그 자리에 정리 잘 안 하고 아무 데나 던져둘 때도 있는데, 내가 마련하고도 이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 돈 낭비에 골치 아픈 일을 하나 더 만드는 셈이 될 것이고, 내가 정리하지 않은 습관 때문에 다른 이용자에게도 민폐가 될 게 분명하여, 나는 저자처럼 따로 사무실 따위 마련하여 내 책을 보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 응. 나 같은 인간에게는 이게 맞아.


다시 이 책 얘기를 좀 해보자면, 저자는 이렇게 책을 자꾸만 들여오니 장소 부족, 집 안 구석구석 책으로 채워 넣느라 거실도 이용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욕을 먹는 건 당연했고,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에도 책이 쌓여 있다니, 아, 이분은 어떤 대책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헌책방까지 열게 되었다니, 놀랍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책이 너무 많아 포화상태이고, 그 책을 팔기도 하면서 정리하고, 책이 많은 공간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헌책방도 책 정리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거였네. (저자의 말대로라면, 헌책방으로 큰 수입을 얻는 건 기대하지 마시고~) 하지만, 이 방법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헌책방은커녕 여기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기에, 아직은, 그래 아직은 이 집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깔끔하게 정리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저자는 보통 많이 구매하는 책장 대신 경량랙과 이케아의 빌리 책장을(경량랙은 지금 집 안 정리에 활용하느라 몇 번 구입했는데, 추가로 책장이 필요해지면 이것도 생각해 봐야겠다), 소장한 책 목록 정리할 수 있는 비블리(https://bibly.ai/) 앱도 추천해 주었다. 내가 가진 책 목록을 정리해 주는 것도 좋은데, 사실 나에게는 내가 찾는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이 공간 안에서 책을 바로 찾을 방법이 시급하다.


이 책 안에서 뭔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책 정리하는 법을 찾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책에 관한 다른 부분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책을 옮길 때 박스보다는 보자기를 이용하는 게 낫고, 책 커버를 씌우는 것도 책을 잘 보관하는 방법이며, 손상된 책을 손보는 방법도 언급한다. 손상된 책을 손보는 방법 보다 보니, 나도 종종 이용하는 목공풀 바르는 방법도 있었고,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스테이플러 박는 방법도 있었다. 가정용은 종이 몇 장 박히는 스테이플러인데, 예전에는 페이지 벌어져서 페이지가 뚝뚝 떨어지는 책을 도서관으로 가지고 가서 큰 스테이플러 박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오래된 양장본은 세워서 꽂아두는 것보다 누워서 놓는 게 덜 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니, 책장 맨 아래 칸에 꽂아둔 두툼한 양장본을 편히 누워서 자게 해 둘 마땅한 자리를 찾아봐야겠다.


그 외에도 서재의 책을 정리하는 방법을 조언하는데, 작가별, 장르별, 출판사별, 시리즈별, 색깔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방법은 새삼스럽지도 않기에 그냥 자기가 내키는 대로 정리하는 게 방법이지 않을까. 나는 딱히 어느 기준으로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인데, 이 작은 방에 있는 책장에 거의 세 부분으로 분류하여 꽂아두기는 했다. 맨 왼쪽(방의 안쪽)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장해 두고 언젠가는 읽고 싶은 책, 가운데는 세계문학을 꽂아두고 이 책들 역시 언젠가는 다 읽지 않을까 기대하며 남겨두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방문 쪽)에는 최근에 산 책 위주들로 꽂아 두었는데, 이 녀석들은 빨리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고, 굳이 소장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여 빨리 이 방에서 내보내야 하는 마음으로 꽂아두었다. 그럼 이렇게 책을 막 내보내면, 언젠가 또 이렇게 내보낸 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생기는데, 그때 또 한 번 방출 여부를 확인하고 고민한다. 먼저 도서관 비치 자료인지 검색해 보고, 도서관에 있는 책이면 바로 방출 상자로 넣어두고, 도서관에 없는 책이면 일단 다 읽어보고 내보낼지 말지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일단 보류. 그럼 이렇게 내보내는 책은 또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도 세 가지로 정하게 되는데, 중고 도서로 판매하거나, 도서 기증으로 보내거나, 너무 오래되고 중고 판매나 기증으로 보내기에도 애매한 것들은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보낸다. 이 책의 저자도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선물하거나 중고로 팔거나 기증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그러고 보면 책을 정리하는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정녕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니면 정말, 정리하지 않는 게 방법일지도. ㅎㅎ


“아예 정리하지 않는 것도 저리의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잡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다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정리하면 됩니다. 세상에 급한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도저히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이 많아 포기한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애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책 정리하는 법, 117페이지, 조경국, 유유출판사)


이 방 안에 쌓아둔 책들이 그 양을 늘리지 않도록 신경 쓰자고 다짐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 같기는 한데 항상 불안하다. 책을 계속 사고 있는데, 여기서 나가는 책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결혼하면서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이 방은 오롯이 내가 가진 책들로 채워져 있는데, 사실은 아직 엄마 집에도 내 책이 남아 있다. ㅠㅠ 한 번씩 엄마한테 갈 때마다 필요한 책을 몇 권씩 들고 오기는 하는데, 그걸로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엄마가 이사를 하시거나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그날이 오기 전에 내 몫의 정리는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지 않다. 엄마 집에 남겨두고 온 책의 대부분은 버려질 운명일 것 같지만, 그것도 진짜 이삿짐 싸는 수준의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결론은,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 얼마나 많은 책을 남겨두고 잘 정리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보다 더 적게 소장하는 법을 찾고 싶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살아갈 것 같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남긴 책을 정리해 줄 사람도 없을 테니.


나는 애서가도 아니고 장서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의 책(대충 눈짐작으로 세어보니 이 방안의 책은 5백 권 안팎일 것 같다)으로도 버거워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보다 더 많은 책을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책을 많이 소장하는 사람, 책을 아끼고 보듬어주는 사람, 책에 마음을 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다들 그 책들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아껴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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