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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1991년, 열여덟, 귓가에서 함성이 떠나지 않았다. 환청! 마치 테트리스의 잔상이 칠판 위로 후두둑 떨어지던 것과 같은, 소리없는 소리들. 그것은 속삭임도 개인적인 주절거림도, 지하철에서 듣게 되는 나와 같은 핸드폰의 벨소리도 아니었다. 그때의 특이한 기억이 사실이었는지, 아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무한의 공포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구부정하고 울퉁부퉁했다. 고시원과 같은 독서실에는 일탈과 우회를 꿈꾸는 혁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두행진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뚝섬역 어디서건 함성이 터져나왔는데, 그 함성은 몸이 없는 낱장의 외침이 프린트되는 비명과도 같았다. 목소리가 없는 소리, 몸이 없는 소리! 그것은 분명 환청이었지만 나를 닮은 비명이었다고 기억한다. 그즈음 현장에 들어간 스물 넘은 선배는 내게 활동비조로 오만 원을 주었다. 그가 처음 공장에 들어가 벌어들인 돈이었다. 그걸 들고 워커힐에서 열리고 있는 케테 콜비츠 판화전을 보러갔다. 방직공의 봉기나 전쟁 연작은 시대는 틀리지만 당시 한국사회의 아비규환을 보여주는 듯했다. 처절함, 몸부림, 함성...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버리거나 부술 것! 깃발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개미떼처럼 서로를 밟고 혹은 기대고 부대끼며 깃발을 흔드는 봉기는 극단의 처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당시 내 안에 몰아치던 빈 바람, 보이지 않는 바람의 소리였다고 생각한다. 변방의 쓸쓸함과 버리거나 부술 것을 강요받던 시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엄마는 밥상머리에서 혁명가를 따라불렀다. 그것은 빼앗긴 것을 찾으려는 엄마의 유행가였다. 나는 좀더 조용해지고 싶었고 떠돌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는 그러한 그림자마저 감시받던 검열의 시절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 안에서 부는 이러한 검열의 바람, 들리지 않는 환청을 가장 무서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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