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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끝방
  • 고요한 우연
  • 김수빈
  • 11,250원 (10%620)
  • 2023-02-20
  • : 34,230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의 슬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그게 그가 가진 비범함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는 많았고, 주인공 수현의 입장에서 <고요한 우연>도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애초부터 한 사물이건 사람이건 그것을 평범과 비범으로 나누는 것이 무의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받아들였다. 한 존재의 온전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달처럼, 보이는 앞면과 영원히 볼 수 없는 뒤편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수현이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지아와 정후, 우연이 수현이를 비범으로 보는 것도 그런 원리다. 우리가 서로를 완성해주는 마지막 한 조각이라는 건 존재의 의미를 말하는 방식으로는 이미 고전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매우 특별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긴해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혼란, 평범함과 특별함의 뒤섞인 망설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자아 분열적 모순, 완벽하게 나뉘지 않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불완전한 구도, 달의 앞면과 뒷면처럼 영원히 동시에 볼 수 없는 미완의 온전처럼 혼란스러운 것이 일상의 삶이다. 그런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이 여전히 많고, 모범답안이 있는 것 같지만, 삶이란 무수한 선택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 것도 사실이다. 모범답안은 내가 선택했을 때만 유효하고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 선택을 거부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특별하다고 할 사건이 없는 이 작품은 사뭇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그러니까 수현, 지아, 정후, 고요, 우연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내게 수현은 자기 한계를 알면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염려하고 배려의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서 특별하다. 지아는 수현이 보지 않는 수현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한결같이 지지해 준 친구였다. 그런 지아도 말하지 않아 모르는 게 있으리라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정후는 아픈 누나에 대한 연민을 친구들을 향한 다정함, 고요의 난처함을 말없이 돕는 것으로 확장해서 특별하다. 우연은 한없이 조용하지만, 길고양이를 돕고 고요를 돕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어쩌면 문제적인 인물이 고요일 텐데, 수현이와 주변 인물의 행위가 고요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관심을 받는 고요는 그런 관심을 거부했다. 그 대가로 쓰레기 테러, 괴롭힘, 따돌림 같은 폭력에 시달려도 그걸 감당하는 쪽으로 맞선 인물이다. 그런 선택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안간힘이라는 건 고요가 온라인에서 수현과 주고받는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엿볼 수는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고요의 말을 온라인에서 들을 수 있다.

줄곧 고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우연으로 가버린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추앙과 질투를 동시에 받고 그에 따른 폭력적 사태에도 무신경해 보이는 고요의 존재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수현의 관심이 정후에서 고요로, 다시 우연으로 옮겨가는 것이 수현의 오지랖을 보여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고요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 제목이 서사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 것에서 나아가, 혼란을 주었다는 것, 중심이 되는 큰 줄기의 서사가 없이 평범의 비범을 말하는 말이 너무 많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한다.

놀이터에서 누가 밀어 넘어뜨려도 그냥 툭툭 털고 일어서고, 수현을 밀었던 개구쟁이 녀석이 넘어졌는데, 달려가더니 그 애를 일으켜 주고 그 후 그 애가 수현이를 지켜주더라는, 엄마가 너는 너만의 방식이 있구나, 나는 참 다정하고 단단한 아이를 낳았다는 생각을 갖게 한 어린 날의 수현이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쉽다. 넘어져도 툭툭 일어서고, 가해자였던 아이를 돕고 결국 그 아이의 마음을 돌린 수현의 삶의 방식은 절대 쉬운 게 아니다. 어릴 적 수현 얘기를 들어보면 수현의 힘은 편을 가르거나 벽을 치는 방식이 아닌, 순함의 힘이다. 이 순함을 평범이라고 말했던 거고, 독자인 나는 이 평범의 힘을 평범하지 않게 보여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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