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Ⅰ-Ⅱ』
욘 포세 (지음) | 손화수 (옮김) | 민음사 (펴냄)
기존의 인물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란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배우 차인표씨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본다면]이 옥스퍼드 대학의 아시아 중동학부 한국학 필수교재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그가 소설을 쓴 계기가 몹시도 흥미로웠다. 어느 날 본 위안부의 삶... 열여섯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캄보디아 오지에서 55년을 살아온 훈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사실 제대 후 본 장면이 마음에 남아서 소설을 결심하고 2009년에 출판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런 홍보도 안 되고 이슈도 안 된 책이라서 절판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 계기에 이르러 비로소 다시 빛을 본 책이다.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낯선 영국 땅에서의 시작으로 말이다.
소설 멜랑꼴리아 역시 실존했던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바로 19세기말 실존했던 노르웨이 풍경화가인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이야기이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그런 삶을 작가는 멜랑꼴리로 녹여내였다. 특유의 묘사적 화법과 대사의 표법 기법으로 소설은 깊숙이 그 삶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있는 듯하다. 흡사 푹 책 속으로 깊게 빠져드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언가에 푹 절여있는 느낌이다. 화가의 멜랑꼴리의 삶이 작가의 펜에 녹아들어 결국 독자까지 그 속으로 유인해내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작가가 희곡 작가라는 사실이 와 닿는다. 그래서 이렇게 그림을 보는 것처럼, 연극 한편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구나 싶은 것이...
라스 헤르테르비그가 위대한 풍경화가가 되고자하는 마음으로 한스 구데가 재직 중인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로 찾아가서 그의 평가를 기다리면서 가슴 졸이는 장면은 어찌 보면 참 안타까웠다. 결국 예술은 누군가가 발견해주지 않는다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만 만족하는 그림, 글쓰기 등 등은 과연 누가 정해준 기준인가? 결국은 드러내야하고 평가받아야 인정받는 것이다. 사후에 인정받는 것이 솔직히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은 과연 예술가가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싶다. 배우 차인표 아니, 이제 작가로 칭해도 마땅한 그가 이야기한 이들처럼... 말할 수 없는 이들에겐 대변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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