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고모는 내가 자기를 붙든 것이라고 한다. 그날 여원재를 다녀 온 이후, 지금까지 남원에 살게 된 것이 나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신의주를 못 가게 했고, 내가 처량해 보여서 고모가 남아 준 것이라고 한다.
거참, 누구 말이 맞는 것인지.
니 고모는 명성관에 머무르는 동안 아편도 하고, 술도 많이 마셨다.
나는 그게 못할 짓이라고 날마다 찾아갔다.
그 사람은 나를 알아볼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알아볼 때는 울기만 했다.
울고 또 울고.
그렇게 한 달이 넘은 것 같다. 나는 날마다 그 사람을 찾아갔다.
그 사람이 나를 붙든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책임이라도 져야할 사람처럼, 그렇게 날마다 찾아가서, 술도 뺏고, 아편도 못 피게 하고 그랬다.
그러던 몇날 며칠이 지나고, 니 고모가 자기를 책임질 수 있냐고 했다.
멍 하더구나. 내가 그 사람을 책임질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고숙은 말을 멈추고 잠시 수돗가 펌프를 응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여원재에서 넘어와서 그 길로 신의주를 바로 갔더라면,
내가 무슨 오지랖으로 그 사람 삶에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남자 만나서 더 행복했을라나... 싶기도 하고.
전처 부인을 죽인 여자라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고, 전처 자식들 눈치 보면서 명절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집안 대소사 지내면서, 첩이라는 속닥거리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다.
- 팔십 평생 호적에 처녀 인생, 우리 고모만 가엽구나 가엽구나
- 눈 맞은 남자 하나 육십 평생 같이 해도 호적은 남남. 어허 어허라
...
우리 고모 왈.
나의 친할머니께서 다른 집으로 아들 하나 낳아 준다고. 재가하러 가야한다고, 당신이 낳은 딸 셋 중에 위로 두 딸을 모두 각각 남의 집에 식모로 팔아버리고 그렇게 인월로 들어갔더란다.
인월에 가서 아들 하나 낳고는 남편이 죽어버리니 생고생 개고생 지옥고생 한다는 소식이 들렸더라.
열 두살에 남의 집에 식모로 팔려가서, 육년 살이 생고생 개고생 끝에 콧물 닦고 눈물 쏟아 모은 돈으로
새롭게 살아본다고, 아편쟁이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단다.
그 길로 신의주로 넘어갔다가, 삼년 만에 옷때깔 몸때깔 사람때깔 사방천지 알아보는 이 없을 정도로 요조숙녀 뺨치고 신여성 저리가라는 모양으로 남원 땅에 내려왔단다.
여원재 고개 넘어, 니 할매 만나서 욕한바가지 실컷 퍼붓고, 떡살가루 눈 가득 쌓인 곳에 열두 살 어린 한을 쏟아버리고 나올라 했단다. 그런데, 니 아버지, 어린 동생 보고, 그 못사는 살림살이 보니, 어찌도 사는게 원망스러운지 모르겠더란다. 그 길에 차안에서 확 죽어버릴까 그 일만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벌써 남원역이란다.
그길로 바로 신의주로 돌아갈까 망설이며 기차를 기다리다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꾸만 뒷골이 당기더란다.
인월에서 이 할망구나 나를 못가게 하는 것이구나- 했단다. 있는 정 미운 정 모두 잘라버리고 돌아서려는데,
자꾸 뒷통수가 뜨겁더란다.
역사에서 나와 보니, 그 택시 자동차가 그대로 있더란다.
"저 양반이... 참.. 요상한 일이네. 내가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저 양반이 있네..."
남원에 왔다가면 고모 인생, 술술 풀릴거라 여겼단다.
열두 살에 자신을 팔아버린 모질고 인정머리 없는 모정만 끊어내면 새 삶을 살 것이라 여겼단다.
그런데... 에고 에고... ..." 이 소리를 육십 평생 하며 살 줄이야, 그때 어찌 알았더냐.."
우리 고모, 한숨마다 섞어 가며 하신 말씀이다. "내가 그때 인월을 왜 갔다냐.“
(6회차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