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아버지 학교] 밑줄 긋기
연탄-아버지 학교 13
(시인 이정록)
아비란 연탄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둔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아비란 연탄같은 거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
어느 구절에서도 아버지의 한숨이 들리지 않는 것이 없다.
헉헉대며 뿜어 올리는 아버지의 긴 한숨.
연탄장 하나로 온 방안이 뜨끈해지고
연탄장 하나로 온 식구가 매달려 밥을 먹던 그 시절. 아버지 한숨으로 불길이 되던 그 시절.
그러다가.. 어느 날.
연탄장 하나 낮달처럼 하얗게 창백해지고 가벼운 재가 되면 내 아이들 뛰어다니는 골목길을 위해
한몸 아낌없이 재로 가루로 으스러지고 부서졌지.
그게 아버지의 사랑이야.
아버지의 한숨은 아버지의 땀이고 아버지의 수고이며 아버지의 더 할 나위 없는 사랑이야.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고 마는 아버지의 사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