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에 출간된 <한국연극사 연구>(사진실 저)에는 소학지희에 대한 연구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소학지희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소학지희 [笑謔之戱]: 조선시대에 시행된 청각적인 재담과 익살을 위주로 한 연희를 일컫는다. 노래가 아닌 말로, 가면이나 인형 같은 소품 없이 우스갯소리와 우스갯짓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한국무용사전)
소학지희에 대해 수집하고 연구한 내용은 연극 <이爾>로 다시 태어났고 큰 인기를 모았다. 연극도 물론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소학지희에 대한 연구에 빚진 바가 크다는 점은 그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로버트 단턴의 <시인을 체포하라>를 읽으면서 이 내용을 토대로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느슨하게나마, 두 역사 이야기 사이에는 '시(노래)' 와 '연극'이라는 공통지점이 있다. 예술형식 속에 하고싶은 이야기를 숨겨두거나 어떤 대상을 풍자하고 조롱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49년 파리. 루이 15세를 비난하는 작자미상의 시가 거리에 나돈다. 경찰은 바로 수사에 나선다. 대대적인 작전의 결과로 시를 전파한 14인이 체포된다. 이 책의 출발점이 된 '14인 사건'이다.
그 시대 파리에서 경찰들이 시의 출처를 추적해 갔듯이 단턴은 남아있는 자료들을 가지고 사건을 다시금 구성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질문한다. 왜 그랬을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그런 지대한 관심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당연히 책의 내용이 될 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시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14인의 사건 이면에는 어떠한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그로부터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등등 독자가 무언가 밝혀지리라 생각하는 부분들은 사실상 아무런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각 시는 (적어도 경찰이 보기에는) 선동적이었고 그 나름의 전파 양상을 가지고 있었다. 시는 쪽지에 필사되어 건네졌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고 암기하고 낭독했다. 그리고 지하 출판물로 인쇄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에 맞춰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 결국 경찰은 시를 유포한 14인으로 바스티유를 채웠다─그렇게 해서 서류철에 그 경찰 작전의 명칭은 “14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끝내 원본 시의 지은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사실, 지은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시의 연을 덧붙이거나 빼면서 마음대로 시구를 수정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단창작의 한 사례였다. (17~18p)
수사기록 어디에서도 혁명의 기미를 찾을 수 없다. 물론 계몽주의의 기미가 짙기는 했다. 이데올로기적 불만의 기미도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국가에 대한 위협 같은 것은 없었다. 경찰이 왕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파리 시민을 체포하는 일은 빈번했지만, 이번에는 경찰이 파리의 모든 대학과 카페를 망라하는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 나섰고 각양각색의 하급성직자들과 서기들을 잡아들이면서 왕의 절대권력을 총동원해 그들을 분쇄했다. 왜 그랬을까? 어빙 고프먼이 모든 인문학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던 질문을 던지자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34p)
단턴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을 따라 단서를 추적해가면서 당대의 의사소통망을 복원해낸다. 여기서 단턴이 다루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14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구어 세계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방식과 매체에 관한 연구이다. 이는 대중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는 것에 대한 꼼꼼한 고찰의 과정이기고 하다. 개인적으로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후반부에 몇 차례 언급되는 ‘대중’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1794)에서 콩도르세는 여덟 번째 시대, 곧 계몽사상이 혁명을 이끈 자신의 시대에 하나의 지배적인 힘으로 등장한 여론을 인정했다. “여론은 형성되었다. 그것은 참여한 사람들의 수에서 비롯되어 강력하고, 아주 멀리서도 모든 정신에 동시에 작용하는 동인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활력이 넘친다. 그러므로 이성과 정의를 지지하며 인간의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서 어떤 것도 감추기 어렵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법정이 출현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주장은 세 가지 기본 요소-문필가, 인쇄기, 대중-에 의지했다. 콩도르세는 그 요소들을 파고들어 역사에 대한 하나의 일반적인 시각을 만들어냈다. 그가 이해한 대로 역사는 결국 관념의 작용으로 추락했다. 문필가들은 공적인 문제에 대해 엇갈린 시각을 펼쳤고 그들의 시각을 출판했다. 대중은 논쟁의 양측을 모두 가늠해본 후 더 나은 주장을 선택했다. 물론 대중이 실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진실이 확산될 것이다. 수학에 진리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문제에도 정말로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쇄기술 덕분에, 사람들은 저급한 주장을 좀 더 오랜 시간을 두고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더 나은 주장이 승리하게 될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해서 여론이 역사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논쟁을 통해-카페의 왁자지껄함과 거리의 시끄러운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고요한 서재에서 점잖게 읽고 성찰하며-실현된 것은 이성이었다. (148-149p)
단턴은 거리의 여론이 철학자들의 담론과 평행을 이루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한다. ‘철학적 이상과 사회적 현실은 결코 일치한 적이 없다’(156p) 그렇기에 그 시대 프랑스 파리에서 경찰들은 시의 전파양상을 추적해야 했고, 단턴 또한 치밀하고 꼼꼼하게 (많고 많은 주석들!)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된 긴 추적을 해 나가야만 했을 것이다.
책의 결론 부분에서 단턴은 한사람의 역사가가 어떻게 먼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구어적 경험을 포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한다. 그리고 대답한다. 기본적으로 탐정의 작업을 통해서이며, 역사연구는 여러 면에서 탐정의 작업과 비슷하다고. 단턴은 성실한 탐정의 태도를 취하지만, 독자들에 따라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느 순간 기대하는 바와 상관 없이 흘러간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별다른 자극 없이도 차분하게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