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사냥꾼'은 현재 디즈니+ 등의 OTT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의 원작소설이다. 재작년인 23년 말에 발표되었고 작가는 최이도라는 생소한 이름이라, 이쪽 분야에서 계속 활약을 해왔던 작가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모출판사의 공모전에 '연쇄살인봇'이라는 단편소설을 하나 응모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이력이 나오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작가 프로필도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했고 직관적이기보다는 추론적인 편이며 대체로 배운 것을 기반으로 글을 쓴다는 식의 별 알맹이가 없는 내용 밖에 없어서 언제나 그렇듯 작품으로 판단해야겠지만 읽기도 전에 뭔가 모를 불안감이 스쳐간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스릴러 장르이고 특이하게 사체를 부검하는 국과수의 법의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장르에 도전하는 요즘 작가들이 전문지식의 부족함을 커버하기 용이한 '도메스틱 스릴러'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설정이긴 하다.
참고로 법의관이 주인공인 작품으로는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국내에도 시리즈 대부분이 번역되어 나왔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고, 나도 시리즈 첫번째 편인 '검시관'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워서 후속작들까지 꽤 사모으기도 했다.

어쨌든 법의관이라는 전문직을 선택했다면 그 분야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 경찰행정학 전공에 배운 것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굳이 내세웠던 작가의 프로필 대로 우리나라 경찰기관과 국과수 등의 전문적인 수사과정을 디테일하고 리얼하게 제대로 묘사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작가만의 장점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도입부에 곧바로 법의관인 주인공 세현이 등장하여 피살자의 사체를 부검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액살이나 일혈점 같은 전문용어라든지 안구의 피맺힘을 살펴보는 장면을 포함한 부검순서 등은 분명 취재를 통한 자료조사 없이는 묘사하기 힘든 부분이라 작가가 고증을 위해 나름 노력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오긴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어설프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일단은 부검 과정을 옆에서 함께 지켜보며 체험하는 듯한 현장감이 좀 부족한 듯 했다. 부검실에 놓여있는 사체의 외형이 먼저 한눈에 들어오도록 전체적인 묘사가 우선되어야 독자들도 현장의 모습을 그려가며 부검 과정을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을텐데, 피해자의 얼굴 생김새와 체형은 물론 사망시의 자세나 표정 등 기본적인 모습은 전혀 언급도 없이 심한 부패 상태와 열려있는 복부에 꿰맨 실 따위의 부분적인 정보만 툭툭 던지듯이 묘사하니 현장감은 물론 주인공의 부검 실력 조차도 그다지 설득력있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부검 장면은 가해자의 성격이나 능력치 등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앞으로 주인공이 상대할 범인이 어떤 인물인가 하는 점을 독자들이 미리 인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검을 통해 범인의 정신상태와 피지컬, 범행수법과 특징, 더 나아가 범행동기까지 유추해서 스릴과 공포감을 느끼며 주인공의 심리에 감정이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에도 이 책에서는 그저 범인이 주인공과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임을 알려주는 용도 외에는 딱히 의미있는 장면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초반부터 범인을 밝히면서 시작하는 스릴러 타입을 선택했으면 당연히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서사가 설득력있게 제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중간중간 주인공의 꿈이나 회상을 통해 살인마 조균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해도 거의 실체가 없는 허상을 마주하는 듯한 별 영양가 없는 내용들 뿐이라 스토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에도 그다지 공감과 몰입이 되지 않는다.
'양들의 침묵'에서 똑같이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압도할 정도로 엄청난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발산했던 한니발 렉터를 떠올려 본다면 캐릭터 소개나 활용법에서 너무나 비교되는 부분이 있다.

작가는 모든 사연과 비밀을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몰아서 한방에 터트리는 전략을 짠 것 같은데 황당한 건 후반부 반전과 결말을 다 보고나서도 여전히 살인마에 대해 알게된 게 없다는 점이다. 조균은 어떤 이유로 살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왜 그런 살해방식을 사용하는 것인지, 살인 과정에 어린 딸은 왜 끌어들이는 것인지, 어떤 정신질환이나 트라우마가 있는 것인지, 피해자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지 등등... 끝까지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는 게 없다.
솔직히 다 읽고나면 이 책이 정말로 범죄스릴러 장르가 맞긴 한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정작 작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각자 어릴적 트라우마가 있는 두 남녀의 치유와 러브스토리인데 여기에 자극적인 요소로 사이코패스 살인마 설정을 가져다 붙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얼마 전 리뷰했던 '급류'와도 상당히 비슷한 구석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6371187
어쨌든 이 책은 살인마 조균과의 대결보다는 오히려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는 세현이 하필이면 어릴 적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정현과 동종 직업군에서 운명적으로 우연히 만나서 서로를 치유해가며 서서히 호감을 가지는 과정에 스토리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조균에 대해서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고 마치 편집이 튀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급하게 건너뛰며 전개되는 느낌이라면, 세현과 정현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커피 마셔라, 물 마셔라 따위의 세상 한가하게 꽁냥꽁냥하며 별 쓰잘데기 없는 대사와 장면들로 느릿느릿하게 진행된다. 이 책을 스릴러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선택과 집중이 완전히 반대로 되어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경찰대학 출신의 정현이 동료 일반 형사들과 겪는 미묘한 갈등이라든지 엉뚱한 범인 쫓는 헛발질 출동 씬 등, 범죄 수사물의 전형적인 클리셰도 적당히 챙겨넣었지만, 어차피 러브스토리가 중심이고 범죄스릴러는 양념에 불과한 수준이라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이런거 저런거 다 떠나서 주인공들의 수사 과정이나 러브스토리 자체도 그냥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두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계기가 되는 여러가지 자잘한 상황과 대화들이 대부분 작위적으로 느껴지거나 그다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가 이야기꾼으로서의 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당연히 외모이고 독자의 감정이입에도 큰 영향을 주는데 이 작가는 왜 주요 캐릭터들의 이목구비조차 묘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세현은 찢어진 눈에 마른 얼굴, 정현은 젊고 건장한 체형... 이 정도가 전부이고, 나머지 석우, 혁근, 창진 같은 경찰 동료들은 그냥 이름 정도만 부여되어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캐릭터들의 생명력이 약하니 대사에 힘이 실리지도 않고 갈등에 공감하기도 어렵다. 책 속에서 자기들끼리는 서로 아픔을 이해하고 호감도 느끼는데 독자는 강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인 것이다.

박스 테이프에서 지문 채취하고 CCTV에서 큰 차 뒤져보라고 조언하는 정도 외에 법의관으로서 특별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장면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정현이 계속해서 그녀를 대단한 실력자라고 찬양하는 등의 말로만 캐릭터를 설명하는 방식도 역시나 필력 부족의 결과물이다.

게다가 세현은 어릴 적 고아가 된 상황에서 어떻게 먹고 살며 의대 6년까지 보낼 수 있었는지, 성형은 무슨 돈으로 한 것인지, 겨우 10살 정도의 나이에 옆에서 시체처리 몇번 거들었다고 의대 동기들이 놀랄 정도로 해부의 달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그녀도 따지고 보면 분명 범죄자인데 촉법소년이라 용서하고 무시해야 하는 것인지, 조균은 또 20년 동안 어떻게 먹고 살며 새로운 가족을 꾸린 것인지 등등... 납득하기 어려운 수많은 의문점들은 애초에 아빠와 미성년자인 딸이 한 팀이 되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황당한 설정에서부터 이미 개연성은 개나 줘버린 듯한 모양새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한다.

본문 속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받아들이면 돼요'라는 문장은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 책이 드라마화가 된 것은 아무래도 연쇄살인마 부녀가 20년 만에 다시 대결을 펼친다는 흥미로운 설정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볼 땐 개연성 엉망에 대사도 너무 별로라 많은 부분에서 각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당연히 조균 캐릭터만이라도 존재감을 살려내는데 주력을 하겠지만 드라마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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